[루블린 기행] 이 성의 주제를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루블린 성>, 루블린 역사의 생생한 총 압축판

by 흑투리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흑투리, 2026.01.01



특별히 이유는 없지만 다가오면 기분은 고양되는 신정(新正). 이럴 때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부류들이 있다. 바로 한 해 계획 플래너들! 이 분들은 한 해가 다가오면 어떤 목표들을 달성할 것인지 야심차게 계획을 세운다. 무기력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것보다는 나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투리도 한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올해부터 본인은 한 해가 다가온다고 부랴부랴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평소대로 해치워야 할 목표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솔직히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갔다고 개인 자체는 크게 변하는 게 없지 않나. 게다가 계획이란 모두 완벽히 지켜지지는 않는 법.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인데 굳이 한 해씩이나 세세하게 계획을 짤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이건 투리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늘 그렇듯 투리는 여러분을 항상 뒤에서 응원하겠다!








커서는 본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는 '까이유'라는 영상을 자주 봤었다. 본인이 기억하기로 이 아이는 오프닝 때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입이 닳도록 노래를 불렀는데, 딱 한 에피소드, 어른이 된다는 건 노화로 이어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른이 되기 싫다고 고백했었다.



물론 투리도 나이를 먹는 건 싫어하지만, 신년의 그 분주하고 떠들썩한 분위기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감과 이에 덩달아서 신이 난 시장가. 이래서 1월 초만 되면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들뜬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본인도 여러분의 기대감을 자극할 목적으로 오늘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다.



"이 성의 주제를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무슨 말이냐? 이번 글의 주인공은 폴란드의 루블린에 있는 성인데, 주제를 도저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성들을 둘러보았지만, 이 성처럼 콘텐츠가 다양한 것을 넘어 각 내용이 극단적이기까지 한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만큼은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위의 제목으로 글을 시작해 보았다. 보면 기분 좋은 유럽 사진들이 많이 있으니, 많은 유익과 힐링을 얻고 가시길 바라겠다!





우선 루블린 성이 어떤 성이냐. 이 성은 말 그대로 루블린에 있는 성이다. 하지만 단순히 루블린에 위치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고, 이 도시에 있어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성이다. 폴란드 동부의 역사, 문화, 정치, 종교와 전쟁사가 모두 이 성 안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 안에는 박물관, 성당, 미술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 있다. 심지어 이 성은 왕실의 거주 공간에서 정치범 수용소까지 그 용도마저 역사적으로 극과 극을 달렸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본 성의 모습.



이제야 투리가 왜 이 글의 주제를 못 정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나? 그래도 구태여 이 성을 재미없게 정의하자면, 루블린 성은 '루블린의 관광지' 그 자체다. 외관만으로 봐도 이 성은 구시가지 안에서 임팩트가 강한 건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성 안을 보지 않고서는 루블린을 진정으로 관광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루블린 안의 대표적인 전시관들이 성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상징성 자체가 이 성 안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내용이 너무 길어 다음 글에서 소개할 미술관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아마 이 글만 보더라도 여러분은 루블린 성에 대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들은 다 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입구에 들어가서 표를 사니, 루블린 성 관광은 역사관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안내원이 알려주었다. 그 말을 따라 투리도 본인이 관광한 순서대로 이 성을 소개해주도록 하겠다!





다시 언급하지만 루블린 성의 첫출발 지점은 역사관. 정확히 말하면 선사 시대의 전시관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참고로 입구에 가면 루블린 성에 관한 오디오 앱의 QR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데, Play 스토어 기준 'Museum Narodowe w Lublinie'라고 하는 이름의 앱이다. 설명이 궁금하면 다운받으면 되지만, 지원 언어는 폴란드어,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밖에 없으니 참고하시길.





위 사진은 이 전시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전시된 유물들이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겠지만, 구석기 시대의 도구들이다. 한국의 구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사냥하는 등을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왼쪽) 선사 시대 때 쓰인 도구들 / (오른쪽) 당시의 매장 흔적.



오른쪽의 사진은 6000년 전 당시 사람이 매장되었을 때를 재현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때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리 아래에 염료를 뿌린 다음 시체와 함께 여러 가지 도구들을 함께 묻었다고 한다. 오디오에서 실제로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언급하긴 했는데, 폴란드 이름이 친숙하지 않아서 어디를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폴로니나'라는 우크라이나 쪽을 말하는 것 같은데, 뭐 당연히 유럽 동부 어딘가에서 발견한 거겠지?



동유럽 쪽? 선사 시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영상



청동기 시대의 개의 무덤. 이 당시에도 소중한 반려견을 매장하는 문화는 존재했었구나. 댕댕이는 쩔수 없지.



철기 시대에 썼던 유물들. 왼쪽 사진의 유물들은 무덤에 쓰인 것들이다



위 사진들은 시간이 조금 흐른 철기 시대의 유물들인데, 이때부터는 사람의 무덤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까지는 죽은 사람을 그대로 매장하는 방식을 썼지만, 철기 시대가 되어서는 사람을 화장하기 시작한다. 왼쪽 사진을 보면 토기들이 보일 텐데, 이 토기들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를 보관한 것들이라고 한다.



선사 시대 후반에 사람들의 인상착의와 매장된 모습을 재현한 장면. 그러고 보니 본인은 사람의 무덤 사진을 왜 이렇게 많이 찍었을까.



선사 시대의 사진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준 것 같다. 솔직히 구석기에서 철기 시대까지는 아시아나 유럽이나 생활 방식에 큰 차이는 없어 보여서, 구태여 구체적인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루블린 성에는 더욱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까!



폴란드와 루블린 지역에서 자주 쓰이던 화폐들(10세기~14세기)과 메달들을 모아둔 전시관.



자, 다음으로 등장한 전시관은 10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폴란드 영토에서 사용된 동전들과 메달들을 모아놓은 전시관이다. 폴란드에서 메달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던 때는 지그문트 1세 왕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만든 주체는 주로 이탈리아인과 독일인, 그리고 일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메달에 사용된 재료가 동이나 납 같은 물질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들은 금과 은으로 바뀌었다. 또한 메달에는 점점 역사적인 요소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대형 동전과 메달을 찍어내던 모습을 재현한 그림



메달 제작은 점차 폴란드 전체로 확산되었고, 이후 지그문트 3세 때 도시 그단스크가 그 중요한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메달들은 우수한 품질과 예술성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스타니스와프 2세 왕 때는 메달의 제조 형태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면서 바르샤바가 최고의 메달 제조 중심지로 부상했었다. 지금 그 당시 만들어진 메달들을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옛날 동전들 사진.



동전과 메달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었다. 1830년까지 주요 조폐창은 바르샤바에 있었고, 메달은 비엔나와 베를린에서도 제작되었다. 이 예술가들은 상기의 지역들에서 동전과 메달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봉기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프랑스나 벨기에 등의 지역으로 망명을 가면서 바르샤바의 조폐창은 폐쇄되고 크라쿠프로 옮겨졌다. 게다가 19세기 후반 예술성보다 공예성이 강화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폴란드의 메달 예술은 큰 쇠퇴기를 겪는다.



폴란드와 루블린 지역에서 자주 쓰이던 화폐들과 메달들을 모아둔 전시관 2.



그러다가 1918년 폴란드가 독립을 회복한 이후, 바르샤바는 다시 메달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돌아온 조폐창은 많은 예술가들을 되돌아오게 했고, 이들은 현대 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규칙한 형태의 메달들도 시도했다. 위에서 왼쪽 사진의 메달들은 모두 20세기에 만들어진 폴란드의 메달들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한때 동전으로 쓰였던 것들을 전시한 모습이다. 보면서 어느 정도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메달 사진.



아, 그러고 보니 폴란드의 화폐 단위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별로 없었지? 폴란드가 쓰는 화폐 단위는 즈워티(Złoty)이다. 유럽 연합에 소속된 국가들 중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화폐를 따로 쓰는데, 그중 하나가 폴란드다. 즈워티는 1496년 폴란드 의회에서 처음으로 창제되었는데, 이 화폐는 폴란드가 1795년 삼국 분할로 사라진 뒤에도 상당 기간 사용되었었다. 나름대로 질긴 역사를 가진 화폐 단위라고 볼 수 있겠다.



군용 장비와 전쟁 그림이 담긴 일부 전시관.



자, 지금까지는 대충 내부가 어떻게 전시되어 있는지 보여주었으니 이제부터는 이 성에 대한 얘기들을 해 보자. 루블린 성은 12세기경 폴란드 왕실의 요새로 활용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4세기 카지미에시 왕이 성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더욱 강력한 왕립 성채로 발전한다.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사이에는 왕립 예배당이 건축되기까지 하는데, 해당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벽화가 비잔티움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




짜잔! 이 벽화가 방금 말한 성당의 사진이다. 아무래도 사람도 많고 구조도 좁아서 한 번에 확 트이는 형태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보면 벽 여기저기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폴란드에서 비잔티움 형태의 벽화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이 성 안의 성당이 독보적인 예술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지? 사진들을 좀 더 꺼내 볼까?





이 사진들이 본인이 찍을 수 있는 최선의 사진들이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가? 투리가 이전 글들을 통해 성당 내부 사진을 여러 번 올린 적은 있지만, 확실히 이 성당은 양식이 약간 다르다. 뭐랄까...좀 더 옛날에 지어진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실제로 다를 만도 한 게, 서유럽의 가톨릭과 동유럽의 비잔티움 벽화를 결합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서유럽의 로마 가톨릭과 동유럽의 동방 정교회 사이의 갈등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도 보면 가톨릭과 개신교를 연합시키려는 총회가 있었는데,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진리와는 타협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진 그들의 눈에는 가톨릭을 개신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도 둘 사이의 골이 깊은데, 당시에는 어땠겠는가. 그때는 정치적인 문제까지 같이 엮여서 갈등이 더욱 컸을 것이다. 문화적인 교류가 적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루블린 성지정학적 특수성왕의 정치적 전략으로 인해 이 어려운 것을 해내고 만다. 덕분에 이 성의 벽화는 예술적으로 '기묘하게 아름다운 예외'라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루블린 성에는 기묘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루블린 탑'이다. 사진 위의 원형 건물이 보이는가? 그 건물이 지금 투리가 말한 탑이다. 이 탑이 왜 기묘하냐. 원래는 중세 시대 때 왕실 방어탑으로 쓰이던 이 탑이 나중에는 러시아 제국독일 나치에 의해 감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탑 바로 아래에 있던 우물.



두꺼운 벽, 좁은 창, 고지대 건물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춘 이 탑은 원래 방어용 구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폴란드가 1795년 분할되고 러시아 제국이 루블린을 손에 넣으면서 이 탑을 수감동으로 바꾼다. 수용소로 바뀐 곳은 비단 탑뿐이 아니었다. 루블린 성 전체가 아예 러시아 제국의 감옥 시설로 전락한 것이었다.



입구 바로 옆의 문과 지하층 사진. 지하층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이곳에서 희생한 분들의 명단과 그분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세워져 있다.



이미 감옥으로 사용된 전적이 있는 성과 탑은 시간이 흘러 다시 나치 독일의 수용소가 되어 버린다. 1944년 7월 19일에 이 성을 감옥으로 활용하는 것을 승인한 독일 수뇌부는, 3일 뒤 잔인한 대량사형을 시행한다. 이때 2시간도 안 돼서 300명가량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전해진다. 독일군이 패퇴할 즈음에는 이 대형 감옥에서 출소된 사람들의 수가 약 1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왼쪽) 탑의 위층 공간. / (오른쪽) 그 공간에서 발견한 성의 구조도.



나치 독일이 빠져나간 뒤에도 루블린 성, 아니 감옥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소련군이 이 감옥을 점거해 폴란드 국내군과 반공 활동가들을 투옥시켰기 때문이다. 루블린 감옥이 지금의 문화적인 기능을 갖춘 성으로 바뀐 것은 1950년대 이후였다. 1944년에서 1954년 사이에만 이 감옥을 거쳐갔던 사람들은 32000~33000명 사이였다고 한다.



루블린 성의 탑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모습.



탑 꼭대기로 올라가 전망을 보니, 장면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래, 이 모습을 봐야 진정으로 루블린이라는 도시를 관광한 거지. 하지만 여기로 올라오기까지 그 숨겨진 이면을 알게 되니, 도시의 평화로운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평안한 도시지만, 8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도시 역시 여느 폴란드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나치에 의해) 상당수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관광지는 알고 보면 확실히 다르다.



루블린 성의 탑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모습 2.



그렇게 전망을 여기저기 관찰한 뒤, 투리는 탑 아래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보여줄 공간은 석재 유물 보관실(Lapidarium)!





이 전시는 루블린 구시가지와 성에서 나온 석조 건축의 세부 요소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해당 유물들은 1970년대 루블린 기념물 보존 연구소가 역사적 건물의 건축 연구를 수행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전시된 유물들은 석제 문틀과 창문의 파편들, 고딕 문자의 판 조각, 그리고 기둥머리가 있다. 일부 건축 세부 요소의 예술적 특징은 크라쿠프의 공방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르고 탑 구경에서 관광을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뒤쪽까지 세세히 보고 나서야 이런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물론 이곳도 엄연한 전시실이기에 관리인이 안을 지키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루블린 성에는 볼만한 전시관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이상이 루블린 성의 전체적인 전시관 내용이었다. 정리하면 뭐냐. 루블린 성은 선사 시대 역사관, 동전과 메달 전시관, 성당, 타워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더욱더 기묘한 것은 이 성은 용도마저 서로 딴판인 궁궐과 감옥으로 둘 다 쓰인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성당의 예술적인 특색은 동방과 서방 유럽이 모두 섞인 형태이고 말이다.



이토록 생각도 못할 다양한 공간들이 이 성 안에 있다니, 이 어찌 참으로 난감한 성인가! 여러분이었다면 이 성의 주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 같은가? 그 대답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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