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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Oct 12. 2023

나의 한 조각

우울의 일지 7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날 때마다 지금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글자로 써야지, 기록해야지 하면서 그냥 지나간 며칠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데,

그 문장 하나에  당시 나의 감정 한 조각을 마음에서 퍼 그대로 싣기에 나의 일부가 담겼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일부가 빠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모든 게 나를 잃는 일 투성이다. 

에너지를 소비해 움직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생명 에너지는 먹고, 자고 회복하면서 다시 재생되지만

우울과 불안은 그런 재생이 헛되게 '나'를 모두 고갈시킨다.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그런 순간들이 생기면 무기력하게 우울에 잠겨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슬픔과 괴로움이 의미 없이 나를 다 소비해 버리기 전에,

젖은 휴지 조각처럼 흐물 해져 사라져 버리기 전에 무언가의 의미라도 남기기 위해 나의 조각을 기록한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복합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주된 요소이면서, 왜 그런 일을 만들었을까 하는 자책과 후회도 섞여있다.

누군가는 때로 죄책감 때문에 상대를 더 챙겨주고 용서를 구하지만, 누군가는 죄책감에 상대를 외면한다. 외면한다고 죄책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자책감에 스스로를 아프게 만드는 게 사실 상대에게 위안이 되는 일은 아닌데.

외면한다는 선택지는 가장 쉽고, 편한 길이다. 그래서 나도, 많은 사람들도 그 길을 선택 관계에 어떤 발전도 없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아파하기만 한다. 그렇게 멀어질수록 그 미안함을 갚기는 더더욱 힘들어지고,

후회와 자책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살아가는 일상에도 갑작스럽게 떠올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울증의 판단에 있어 죄책감의 정도가 기준으로 있는 모양인데,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진단 검사에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라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친다. 이 어려운 감정의 원인은 뚜렷하게 짚어낼 수는 없지만 나의 기저에는 첫째로 가족에 대한 애증이 있다.

이상하게 나는 부모님과 관련해서 격한 꿈을 많이 꾼다. 꿈 일지에서도 소개했었다. 불과 며칠 전 꿈그렇다.

꿈속에서 엄마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를 다치게 했고, 결국 엄마는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왔다.

검사지를 받아 읽고 있는 엄마에게 왜인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분노와 원망을 느꼈고, 나는 '이제야 나를 이해할 수 있느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꼴좋다'라는 말이 혀 끝까지 나왔다가 순간 그런 말을 엄마에게 하려는 나 자신에 깜짝 놀라면서 꿈에서 깼다.


동공이 어둠에 적응하는 와중에 나는 꿈에서 방금 막 걸어 나온 것처럼 꿈속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엄마한테 미칠 듯이 화가 나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그냥 너무 원망스러웠다. 또 그렇게 나를 키우신 하나뿐인 엄마한테 극심한 증오를 느끼고 있다는 것에 나는 부끄럽고 죄스러워 눈물이 나왔다.

꿈에서는 유독 감정이 더 증폭된 듯, 복합적인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 오랫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꿈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무엇인가가 아니라면

나의 기저에는 이렇게나 부모님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에서 깨면 너무 밉고, 싫은데 그 마음이 잘못된 걸 알기에 복잡한 감정이 어지럽게 섞여든다.

그렇다고 꿈에서처럼 정신병력을 부모님에게 알리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도 어쩌면 부모님에 대한 미움에 관계의 거리를 두려는 마음인 것 같다.

살아오면서 제일 나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시고 노력하신 부모님을 미워할 때 가슴이 무겁다.

그럼에도 어떠한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보다는 그냥 방문을 닫고 외면할 뿐이다.


관계에 있어 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며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했다.


"어떤 대상이 너무 밉고,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대상이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이 드는 스스로가 매우 나쁜 인간이거나,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죄책감과 수치심이 유발된다. 그로써 속죄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러한 잔혹한 생각을 했다는 걸 자책하면서 벌을 받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속죄하고 용서함으로써 더 큰 처벌을 받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책감은 정말 뼛속 끝까지 이기적인 감정인 것이다. 혼자 잘못하고, 혼자 미워하다가 혼자 미안해하고, 그 자책감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충분히 받았다고 느낀다니

죄책감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말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이 말을 인정해 버리면 죄책감에 대한 죄책감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서 그냥 그 글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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