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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Dec 23. 2023

기억의 "파편"

기억이 아픈 이유


<기억의 파편>

나는 ‘기억의 파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기억의 파편이 많다. 따뜻한 집 안 거실에서 TV를 보며 곰탕을 먹던 기억.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보다가 멀미하던 기억. 분명히 이 파편들도 예전에는 어떠한 장대한 이야기들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어린아이에게는 ‘현재’였을 것이고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작은 파편들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치 재미있게 읽었던 긴 책의 한 페이지만 뜯어내어 주머니 속에 무심코 넣어놓았다가 시간 지나 꺼내 읽어보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모르는 내용 투성이지만 어째서인지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파편들은 어쩌다가 내 머릿속에 남게 되었을까? <홈 스위트 홈>의 ‘나’는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라고 말한다. 기억은 남기려고 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또한 몇 개월이 지난 후, 혹은 몇 년이 지난 후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소중하게 다뤄, 행복한 기억들이 나를 선택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남자친구가 수업 과제로 쓰게 된 글이라고 나에게 보내주었다. 글을 읽고 최근에 생각하던 주제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아서 퍼뜩 답글을 써주었다.


<기억의 "파편">

"기억의 파편"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왜 "파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까?
기억의 조각, 기억의 일부, 기억의 기록 등등 가슴에 남은 짧은 장면들을 표현할 방법은 많은데 우리는 그중에도 '파편'이라는 다소 뾰족한 단어를 선택했다. 사전적 정의로 파편은 "깨지거나 부서진 조각"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모든 것, 그날 먹던 곰탕의 온도, 읽어 내려가던 책의 문장, 설레게 하던 그날의 날씨, 온도, 습도 그러한 것들이 파편으로서 남은 이유는, 그 순간이 깨졌기 때문이다. 삶은 사실 연속적이기보다 순간들의 이어 붙임인데, 마치 창과도 같은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면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을 꿰뚫고, 깨고 지나간다. 그 어떤 행복한 장면도, 끔찍했던 장면도, 온전하게 남을 수 없는 이유이다. 나는 행복감이 벅차게 차오를 때 이 순간을 붙잡고 싶다고, 지금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그대로 멈추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들도 가차 없이 시간에 의해 부서진다.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강렬하게, 그리고 마음 깊이 남은 조각들을 우리는 기억의 파편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는다"라는 말은 반절 정도 맞는 것이다. 삶의 어느 한 장면이 깨지면서 자의와 상관없이 마음을 깊숙하게 찔러버린 파편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 조각이 행복한 순간이 아닌 괴로웠던 순간을 담고 있어도 그렇다. "기억은 남기려고 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원치 않아도 속살을 베고 파고들어 상처로 남는다. 



기억들은 죄다 깨져버린 하나의 세상이고, 깨져버린 모든 것은 아프다. 기억을 재생하는 것이 아픈 이유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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