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 칼럼>

-자발적 빈곤-

by avivaya

“‘업무로서 빈곤 문제와 맞붙기‘라는 변호사의 빈곤 문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이러닝 교육자료를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변호사 교육 콘텐츠다. (중략) 수임료를 내기 힘든 빈곤자를 위한 변호사로서 적은 금액의 1건당 법률부조금 등 수입에도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실존적 고민이 느껴졌다.” (2026-2/12, 한겨레 27p, 세상 읽기-차성안)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물질‘은 큰 논란을 일으킨다. 사회적 강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런데 평소 내가 접해온 그들의 물질 분쟁과는 다르게 생존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생활비 때문이라니. 변호사들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푸드 트력 장사에 나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빈곤이 과연 진정한 굶주림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변호사라는 직업적 특수 효과가 삶의 윤택함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데 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보다는 돈과 명예와 훨씬 가깝고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그들의 가난이 반가운 측면이 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타인이 겪게 될 억울함과 외로움에 적극 나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가성은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속해 있는 집단과 사회에서 협박이나 따돌림을 당하고 있거나 혐오와 조롱에 시달리는 성 소수자이거나 인권이 차단된 사각지대에서 고개 숙여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은 두터운 벽 속에 숨겨져 있다. 그 벽을 허물고 문고리를 찾기 위한 도움의 손길은 절실하다. 실패할 수도 있고 더 두꺼워지는 벽 앞에서 절망할 수도 있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 기꺼이 횃불을 들고 앞장서 주는 용사들. 모욕과 유린의 그늘 속에서 빛을 끌어다 비춰주는 그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보답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큰 혜택으로 부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혜택은 혜택을 낳을 것 또한 분명하다. 게다가 법적 혜택이니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 나에게 주문을 걸어 놓기로 한다. ‘마음껏 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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