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폭삭 속았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by avivaya

신을 처음 만났다고 느꼈을 때 나는 환상을 보았다. 신 앞에 선 내가 기름 부 음을 받고 새 술잔을 받아 든 모습이었다. 나는 감사와 기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무엇보다 선택받았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비록 엉터리 화살표로 선택받은 거였지만 나는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특별하다고 여겨졌고 새 삶을 약속받았다. 나는 매일 신 앞에 갔고 매 순간 신에게 의지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으로 나 자신에게 적폐청산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 확신했다. 어리석게도 내 삶에서 나는 사라졌고 더 이상 선택과 발언의 불필요성에 기뻤다. 내 성향과 적성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물론 선택지도 별로 없었던 삶이었지만 나는 하기 싫은 것들부터 포기하기 시작했다. 신의 이름으로 나는 당당하게 외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신을 위한 삶을 위해 훈련해야 했다. 나의 일상을 마음껏 파괴했다. 귀찮기만 했던 내 역할과 인생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었다. 그따위 것들은 낡고 초라한 것들이라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문처럼 깨달았다. 세상에서 결코 받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신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나의 자격 조건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다. 신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됐다. 신은 포도나무가 되고 내가 가지로 붙어 있다면 포도 열매는 저절로 열린다고 말씀하셨다. 쉽고 뻔한 진리가 내게는 합리적인 근거로 작용했다. 그러나 저절로 맺는 열매가 있을 리 없다. 끊임없이 가꾸고 노력하고 성실하게 돌보는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참뜻을 외면했다. 오로지 신을 믿는다고 말하고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이 가지로서 살아가는 충분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이 태초에 뜻한 바대로 나는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부자가 되고 높아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얼마든지 새 부대로 특별하게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기름 부 음까지 받은 이력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는 나에게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고 회갯거리일 뿐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알 수 있다 믿었다. 나는 날마다 환상을 보았고 예언했다. 그러나 환상은 망상이 됐다. 열매는 모두 썩었고 새와 벌레들마저 지나쳐 지나갔다. 포도나무는 온데간데없었다. 점점 초라해지는 내 모습에 겁이 났다. 당장 이루어질 것 같았던 축복들은 뜬 구름처럼 느껴졌다. 그 날들 속에서 나는 우왕좌왕했다. 좁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 숨어 있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환상을 봤고 응답받았다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짓이 신을 화가 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화가 난 부모로부터 쫓겨난 것만 같았으니까. 나도 그만큼 화가 났다. 그리고 다시는 그 집 문을 두드리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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