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로마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면 무엇을 했을까? 정해져 있었다.
첫째, 패전국 국민 전체를 노예로 만든다.
노예들은 로마로 데려갈 수도 있고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즉시 현금화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을 줄 여유가 없으면 그대로 놓아주기도 했다.
둘째, 여자들을 강간한다. 패전국 남자들이 비겁한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분이었는데,
싸움에서 진 상대를 창피하게 만들기보다는 격분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셋째, 값나가는 물건을 전리품으로 몰수해 로마로 가져온다.
금은보화만이 아니라 광산 채굴권도 있고 대리석 채취권 등도 있었다.
로마인들에게 전쟁은 단번에 많은 재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황제는 가장 큰 몫을 챙겨서 세계 제 일의 갑부였다. 로마제국의 건축 비용은 모두 황제가 기부한 것이다.
넷째, 건물을 파괴하고 불태운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로마에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다섯째, 패전국에 전쟁 배상금을 요구한다. 로마 군이 요구하고 받은 전쟁 배상금은 엄청난 금액이어서
장시간 로마의 재정은 세금을 받지 않고 배상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성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모든 것이 패배한 국민에게는 지나친 처사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신의 나라』에 적었다. 국제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로마에서 개선식이 열렸다.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로 행진하면서 전쟁이 끝나 이제 로마가 안전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은 다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전리품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리품이 많으면 개선식을 여는 데 유리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정복한 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로마군끼리 싸워서 이겼을 때나 싸움 상대가 노예였을 때는 승리해도 쳐주지 않았고,
전리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었다. 제국의 영토를 늘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개선식은 군인들이 ‘전쟁의 신 마르스 벌판’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정해진 길을 따라 포럼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
일반 시민은 흰색 ‘토가’를 입고 몰려나와 월계관을 쓴 장군과 군인들을 정중하게 맞았다.
승리한 장군의 머리 위로 월계관을 들고 있는 노예는
‘모멘토 모리’ 즉 “너는 죽을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라고 외치면서 따랐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매우 가혹한 축하였다.
죽을힘으로 싸워 이기고 온 사람에게 ‘너도 다음에 죽을 수 있다’고 하다니!
로마시대 일어났던 그 엄청나게 많은 전쟁에서 희생되었던 사람의 숫자를 통계로 본 일은 아직 없다.
통상 한 전투가 벌어지면 로마군에서는 100명 단위로, 패배한 편은 1,000명 단위로 죽었다.
로마 군대가 크게 패배했던 전투도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까지 와서 벌인 ‘칸나에 전투’의 경우였다.
원로원 귀족 80명 포함해 로마군 2만 5천 명이 전사했고 2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한니발이 누미디아 기병을 양쪽에 배치해 로마군을 둘러싸며 섬멸한 탁월한 전술은
아직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피해가 그렇게 컸다 해도 정복을 당했던 민족들의 희생자 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로마와 전쟁했던 카르타고는 3차 전쟁에서만 민간인 포함해서 15만이 죽었다.
2차 전쟁에서 패배한 후 로마인들이 요구한 대로 무기를 넘기고 무장해제된 상태로
일방적인 집단학살을 당한 것이었다. 사람만 죽은 것이 아니라 도시가 약탈당하고 일주일간 불에 탔다.
땅에는 소금을 뿌려 장시간 작물이 자라지 못했다. 2만 5천 명 여자들을 포함해 5만 5천 명이
노예로 로마로 보내졌다.
현재 프랑스의 옛 지명이었던 갈리아에 살았던 켈트족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카이사르를 몹시 힘들게 했다는 죄로 혹심한 보복을 당했다.
최대 100만 명까지 사망자를 추정한다. 카이사르는 다시 쳐들어올 생각도 하지 못하게
사기를 꺾기 위해 죽은 군인들의 시신에서 손을 자르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로마에 끈기 있게 저항했던 유대인들은 반란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3만 5천 명이 죽었다.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솔로몬 신전은 통곡의 벽만 남았다.
예루살렘에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져
2천 년 동안 박해를 받으며 방랑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의 눈부신 업적은 폭력이라는 그늘을 간과하게 한다.
제국은 폭력으로 성립되었고 폭력으로 유지되었고 폭력으로 해체되었다.
로마군 자신도 서로 죽였다. 지휘관들은 전방에서 전사하거나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후방의 귀족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권력을 지키려고 사람을 죽였다.
폭력은 위대함과 한 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