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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Jan 22. 2024

파르테논에 색칠을 하겠다고?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 중이다. 

펀드를 조성해 위원회가 출범한 지 40년이 되었지만, 투자한 1억 달러는 어디로 갔을까? 

파르테논은 여전히 기둥 몇 개로 아크로폴 언덕 위에 서있다.

수평 들보, 삼각형 박공지붕, 기둥 8x17개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국경 없는' 건축 모델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위해 대리석 20만 톤으로 올린 건물이었다.

건물 이름 ‘파르테논’이 말하듯 ‘모든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이 상징적인 건물은 잘 보존되지 못했다. 

신전 내부에 모셨던 12m 여신상은 3세기 로마시대 해체되고 상아와 금으로 환원되어 사라졌다. 

유일신교들이 차례로 독점했다. 기독교 교회가 되었다. 이슬람교 모스크가 되었다. 화약저장고가 되었다. 

최악은 베네치아제국의 해군이 한 일이었다. 바다에서 육지로 포탄을 퍼부어 화약에 불을 붙인 것이다. 

원 건물의 ‘그림자’만 남았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인은 ‘그림자’의 내부 벽에 남아 있는 부조를 떼어갔다.

19세기 초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대사였던 엘긴은 그리스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술탄에게 

신전 벽에 있는 '판 아테나 축제 행렬' 부조들을 떼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술탄은 낡은 이교도 건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엘긴은 부조를 톱으로 잘라 200개 상자에 담아 본국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기 집에 보관했다가 비싼 값에 영국 정부에 팔았다. 

유적을 훔쳐간 도둑의 이름을 따서 ‘엘긴스 마블’이라고 부른다. 

도둑도 장물을 잘 선택하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다. 



엘긴의 장물은 현재 ‘더 브리티시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제국주의 이념을 담아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런던에 있는 박물관이다.  

전시물이 70만 점에 달하는 이 박물관은 입장이 무료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전시물이 최소한 70% 이상 소장되어 있어야 입장료를 받는데, 

남의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최소한 남은 양심 덕분에 박물관을 둘러보다 피곤하면 

잠시 나와 쉬었다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 정부는 판 아테나 축제 행렬을 보여주는 부조를 돌려받고 싶어 하며

영국 정부에 여러 차례 반환을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유물과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파르테논을 가장 좋은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곳에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을 오픈하고 특별 전시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영국 정부에 전했다. 

돌려받고 싶다는 의사를 다시 밝힌 것이다. 


영국 측은 그리스 정부의 말을 잘랐다. 전시실 이야기는 할 필요 없소. 

전시 장소를 걱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정 원한다면 잠시 빌려줄 수 있지만. 

그리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빌리는 것은 곧 그것이 영국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아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150m 길이의 부조는 아직 영국에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꿋꿋이 버티고 있는 파르테논의 복원 공사는 2020년 끝날 예정이었다. 

시작할 때는 10년이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2천5백 년 전에 겨우 9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지금의 기술로는 삽시간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복원 팀은 자신감에 넘쳐 매우 건방진 원칙을 세웠다. 

남아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없어진 부분만 새로 깎아 보충한다는 것이었다. 

풀밭에서 수거한 대리석 조각이 10만 개 정도였다. 그것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를 찾아 했다. 

조각의 모양과 가장자리 선 등등 52개 지표를 만들어 컴퓨터로 분류했다. 

그렇게 해서 5년 동안 제자리를 찾은 조각이 700개였다. 9만 9천3백 개 조각이 남았다. 


파르테논은 대리석을 같은 규격으로 잘라 착착 쌓은 건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시각 조건에 맞추어 건물 전체를 조각 작품처럼 다듬은 건축물이었다. 

기둥을 수직으로 보이게 하려고 중간을 불룩하게 했고, 건물 바닥을 수평으로 보이게 하려고 

가운데로 갈수록 불룩하게 올라가게 했다. 

직선으로 보이기 위해 곡선을 쓰다니! 

결국 똑같은 조각은 하나도 없었다.   


파르테논을 복원하는 동안 예상하지 않았던 더 본질적인 의문이 생겼다. 

복원 작업의 의미 자체를 회의하게 되는 것이었다. 

복원해야 하는가?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가? 

비바람을 맞으며 저 높은 언덕에 버티고 있는 ‘그림자’가 더 장엄한 것은 아닐까? 



파르테논은 색깔이 없는 순백색이므로 고고하고 품위 있게 보인다. 

그런데 대리석에 남아있는 물감 자국을 추적해서 컴퓨터로 복원해 보니 금색, 푸른색,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색칠되어 있었다. 원래 입혀져 있던 색깔을 복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총 천연색으로 현란하게 채색된 파르테논은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지 않은가?  

아직 진지하게 논의되지는 않는 것을 보면 색깔까지 복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껏해야 컴퓨터로 복원해 보거나 레이저를 쏘아 색을 입혀보는 행사 정도로 만족할 것 같다. 

다행이다.(2024년 현재 복원 공사가 언제 끝날지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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