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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ie Park Nov 13. 2022

같은 공간 다른 온도

플라이두바이 승무원의 비행일기

/플라이두바이의 취항지 중 롱플라잇을 자랑하는 한곳이 있는데 바로 '모스크바'이다.


현재 비행시간은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5-6시간 정도 소요되고 빈 좌석이 하나 없는 만석과 승객들의 요구가 많아 서비스 레벨이 C+였으나 B로 강등되었다는 비행이다.


이 비행이 원래 레이오버만 존재했으나 어쩐지 내가 입사를 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레이오버와 턴어라운드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스케줄을 받고 일을 한 적이 있어 비행이 얼마나 지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턴어라운드는 제발 피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11월 스케줄을 위한 비딩 당시 모스크바 - only layover를 지정하여 신청했었다.

하지만, 로스터의 신은 정말 나에게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주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3개의 턴 어라운드라는 형편없는 스케줄을 받고 좌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나는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라 술 빼기로 유명한 애로 술 관리를 꽤나 잘해왔던 나인데

어쩐지 몸이 자꾸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술을 3-4일 연속으로 마시고 평소 안 먹던 것들을 먹고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안 하던 것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모스크바 스케줄을 시작하는 전날부터 목이 아프고, 으슬으슬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드디어 코로나가 걸린 걸까 싶어서 자가 진단키드까지 해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콜 씩을 낼까 고민을 하다가 잠이나 더 자자하고 그것마저 놓쳐 어쩔 수 없이 비행을 갔다.


"이코노미 만석"


브리핑 시작 전 비행 정보로 확인 한 승객 숫자.

정말 나에게 라이트 로드는 없는 타고난 일복의 소유자인가라는 생각이 들 찰나

이러다 비행기에서 아파서 메드 링크를 부르는 사태를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빈속에 꾸역꾸역 타이레놀과 코감기 약을 하나 털어 넣었고, 가방에 고이 들어있던 에너지바 하나를 꾸역꾸역 먹었다.


비행,, 정말 정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콜 벨, 막상 가서 물어보면 술을 사겠다. 물을 달라는 단순한 요청이었지만.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오고 있다고 직감한 나는 예민해져있던 상태였고 그 콜벨 마저 신경에 굉장히 거슬렸다.


더불어 플라이 두바이에서 운영하는 비행기의 기종은 Boeing 737로 3-3배열의 좌석만 가지고 있어 캐빈 복도가 1개밖에 없다.

서비스를 한참 하는 사이에 승객들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공간을 만들어줘야 했고,

그 와중에 서비스 시간은 점점 지체 되어버린다.


지체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다른 승객들은 자신들이 먹던 밀 플레이트를 들고와 다른 승객을 위한 밀 서비스를 진행하는데

 플레이트를 치워달라고 들이밀지를 않나, 선택권이 베지테리언 밀과 치킨이 있다고 말했으나 피시는 없냐고 하질 않나.

여하튼 읊자면 너무 많은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서비스 모두를 마쳤다.


한편으로 크루 중 한 명 때문에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을 했을 수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크루 중 한 명은 옆 나라 항공사 출신으로 일했었고 많은 한국인들과 일을 했었다고 했다.

한참 대화를 하며 일을 하는데 그녀가 "너는 영어를 정말 잘한다! 예전에 일할 땐 한국인들 영어를 못해서 너무 일하기 힘들었었어 근데 일을 잘하더라"

라며 나의 영어실력을 칭찬함과 동시에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을 까는 아이러니한 말을 들었다.

사실 이 말을 한 그녀도 영어가 자신의 제2외국어가 아니었기에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외국에서 7년을 살았으니 영어를 못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부터는 한국인들의 영어를 못한다는 기억이 아닌 일도 영어로 둘 다 잘한다는 기억으로 남길 바래"라고 하면서 가방에 있던 한국에서 가져온 티백을 주었고 그녀는 자기 한국 너무 좋아한다면서 기쁜 웃음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몇 가지 함으로,, 비행 내내 다른 크루의 신경을 거스르는 시한폭탄으로 남아주었다.  



/ 모스크바행 비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안도하려는 찰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두바이로 향하는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시큐리티 체크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 비행기 앞, 뒤 문을 열어두는데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며 나의 살갗을 스쳤고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약을 하나 더 털어먹으며 아프면 안 된다는 정신으로 버텼고 다시 5시간 40분의 비행을 마치고 두바이로 도착했다.


/ 디프리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코 끝은 왜 이렇게 시큰거리던지 이유 없이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마음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


룸메 언니의 카톡이 왔고 이번 비행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몸이 안 좋다고 말하던 찰나

자신이 말 잘 듣는 약이 있다며 약들을 내어주었다.


사실 해외에 살다 보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게 상비약이다. 소비가 되는 순간부터 정말 순식간에 없어지는 게 약이라, 그리고 해외에서 구하기도 너무 힘들기도 하다. 더불어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한국 비행이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보관하게 된다.

그런 약을 건네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약기운이 퍼지니 눈이 감겨 서러움이 꾹 눌러졌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이 되었고,자는 동안 땀으로 샤워를 하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개운해져있었다.


다가오는 비행은 정말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들이기에 더 건강을 챙기고 이전처럼 관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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