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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Aug 19. 2022

우산 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

우산은 심리적 거리를 단번에 줄여주는 마법이다.

기나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 남편과 10년만에 영화를 보고 맥주도 한잔할 겸 극장에 걸어 가기로 했다. 

꽃길을 지나 파란하늘을 따라 20분 정도를 걸어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은 종합쇼핑몰 9층에 있었는데 각층마다 놀이공원,식물원등 컨셉을 다양하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내 눈을 더 사로잡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커플들의 데이트 모습 이었다. 내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틈에 남편과 둘이 함께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육아는 시간이 약이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 라는 말을 강산이 한번 지나고 나서야 공감한다.

영화가 끝나고 밤 10시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볼에 물한방울이 톡 떨어졌다.

외진 길이라 우산 살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은 비 좀 오면 어떠냐고 천하태평이었지만, 

나는 오늘만큼은 비를 맞고 싶지 않았다. 

산뜻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문득 오는 길목에 세워져있던(정확히는 버려져있던) 주황색 우산이 생각났다. 


10.9.8...7....6..5.4...3.2.1

그 우산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우산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망가진 우산을 왜 줍냐며 그냥 가자 했지만, 나는 혹시 모른다며 우산을 들었다.

코에 톡, 이마에 툭, 어깨에 툭툭 

까만 비닐봉지 서너군데 작게 난 구멍에서 언제 봉지가 터질지 모를 불안함을 머금은 시한폭탄 같았다.


불안함도 잠시 마침내 봉지가 터지려는 그 순간!

나는 장렬하게 우산을 펼쳤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쏴-아!!


남편은 어느 새 우산을 받아들었고, 내 옆에 붙어있었다. 

두세군데 우산 살이 망가져있었지만, 남편과 내 머리카락이 젖지 않을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허벅지, 종아리에 튀기는 물 따위 쯤이야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비에 맞지 않도록 스틱에 여러 개의 살을 연결하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천이나 종이, 비닐에 씌워 만든 물건' 우산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나도 40년을 우산은 그런 건줄 알았다. 

우산을 비를 맞지 않는 용도로만 알고 산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30년 전 비 내리는 국민학교 앞, 

우산을 든 엄마, 아빠, 할머니 .. 누구든.. 아이의 가족이 아이를 기다린다.

그 아이는 사랑을 쓰고 찰방 찰방 빗물을 튀겨가며 날아간다. 

우산이 없는 나는 주룩 주룩 눈물을 쏟아내며 걸어간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오랫만에 하는 데이트에 낯설었던 

나는 불과 3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편과의 거리를 쉽사리 좁히지 못했지만,

우산 하나로 단번에 찰싹 붙었다. 


우산은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단번에 줄여주는 마법이다. 



나에게 우산은 

           雨傘이 아닌

    이다. 


傘 우산 산

 낳을 산, 자라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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