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심리적 거리를 단번에 줄여주는 마법이다.
'육아는 시간이 약이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 라는 말을 강산이 한번 지나고 나서야 공감한다.
외진 길이라 우산 살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산뜻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문득 오는 길목에 세워져있던(정확히는 버려져있던) 주황색 우산이 생각났다.
10.9.8...7....6..5.4...3.2.1
그 우산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우산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망가진 우산을 왜 줍냐며 그냥 가자 했지만, 나는 혹시 모른다며 우산을 들었다.
코에 톡, 이마에 툭, 어깨에 툭툭
까만 비닐봉지 서너군데 작게 난 구멍에서 언제 봉지가 터질지 모를 불안함을 머금은 시한폭탄 같았다.
불안함도 잠시 마침내 봉지가 터지려는 그 순간!
나는 장렬하게 우산을 펼쳤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쏴-아!!
남편은 어느 새 우산을 받아들었고, 내 옆에 붙어있었다.
두세군데 우산 살이 망가져있었지만, 남편과 내 머리카락이 젖지 않을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허벅지, 종아리에 튀기는 물 따위 쯤이야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비에 맞지 않도록 스틱에 여러 개의 살을 연결하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천이나 종이, 비닐에 씌워 만든 물건' 우산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나도 40년을 우산은 그런 건줄 알았다.
우산을 비를 맞지 않는 용도로만 알고 산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30년 전 비 내리는 국민학교 앞,
우산을 든 엄마, 아빠, 할머니 .. 누구든.. 아이의 가족이 아이를 기다린다.
그 아이는 사랑을 쓰고 찰방 찰방 빗물을 튀겨가며 날아간다.
우산이 없는 나는 주룩 주룩 눈물을 쏟아내며 걸어간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오랫만에 하는 데이트에 낯설었던
나는 불과 3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편과의 거리를 쉽사리 좁히지 못했지만,
우산 하나로 단번에 찰싹 붙었다.
우산은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단번에 줄여주는 마법이다.
나에게 우산은
雨傘이 아닌
友 友友産 이다.
傘 우산 산
産 낳을 산, 자라다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