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나는 양보하는 척 하는 사람이였다.

by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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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보한다고 믿었던 방식

이 글은 나의 생각을 적는 글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내가 스스로 정리하며 바라보는 기록이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양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갈등이 생기면 한 발 물러나고,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준다고 믿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는 배려한다고,

참아준다고,

져준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단단한 착각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실제로는 양보하지 않았다.

목적지는 늘 내가 정해놓고 있었다.



그 목적지를 고수한 채,

그 안에서 몇 걸음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몇 걸음을 ‘양보’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다.




양보라 이름 붙힌 행동은 배려가 아니라

전제 조건을 고정한 양보의 흉내였다.

상대가 진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나는 이미 결론을 정해둔 상태에서,

그 결론까지 가는 경로만 조금 조정해주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조정을 ‘선의’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기대어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목적지였고,

그 목적지를 내려놓는다는 발상 자체가 내 사고에서 빠져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들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이

실은 상대를 위한 것도, 관계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편한 논리를

‘양보’라는 말로 덮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이 나를 성찰로 이끌었다.

불편했지만, 숨길 수 없는 결론이었다.

나는 목적지를 내려놓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단지 목적지를 향해가는 길에서만 몇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불편한 나를 바라보며

목적지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상대와 함께 목적지를 정할 수 있도록

성찰하고 또 성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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