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오체투지 자세

by 운형 최진태

■울산신문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오체투지 자세'》



예의를 갖추고 공경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바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지향하는 그 자체이다.

오체투지는 고대에는 전쟁에서 패한 왕이 상대편 왕에게 항복을 선언하며 완전 복종을 하겠다는 의미로 실행되기도 했다. 이것이 티베트 고원으로 넘어가 ‘예경제불(禮敬諸佛)’의 하나로

굳어졌다.

오체투지는 두 손, 두 다리 그리고 이마가 바닥에 닿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행 문(門)의 시작과 마지막을 이 오체투지로 열고 닫는다.

오체투지가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큰 장점 중의 하나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가장 확실하게 하심(下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의 이미지의 반영인 상대 안에 있는 신에게 나를 낮추어 온몸과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체투지는 온몸으로 올리는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오체투지로 마치 풀보다 더 낮은 자세를 취한 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내려놓고 인간의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恥心)까지도 여의면서, 자존심(自尊心), 아만심(我慢心), 집착(執着)까지도 모두 내려놓고 소욕지족(少欲之足)함으로써 비로소 수행인의 참된 도리인 ‘하심(下心)’을 실천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간절한 절은 무릇 이마가 땅에 닿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만(我慢)이 사라지게 만들면 이마가 스스로 땅을 찾아 내려가니 오체투지가 확실하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내 마음 안에 있는 순례자가 밖으로 나와 그동안 갈망하던 신성함과 만난다는 얘기다.

티베트인이라면 평생의 소원이 라사에 있는 조캉사원까지의 오체투지 순례라고 한다. 지방에서 출발하여 몇 년 동안 조캉사원을 향해 나아 가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들은 출발 때부터 오체투지를 하면서 가기 때문에 조캉사원에 닿을 때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는 도중에 죽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하나, 이들은 아무런 후회 없이 오히려 편안히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놀라운 신심(信心)이다.

‘오체투지 자세’를 ‘아스탕가 나마스카라 아사나(ashtanga namaskara asana)’라고 한다. 아스타는 8을 의미한다. 몸의 여덟 군데가 땅이나 바닥에 닿게 하는 경배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양손, 이마 혹은 턱, 두 무릎, 두 발, 가슴을 합하여 인체 여덟 군데가 땅이나 바닥에 닿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앞서 언급했던 사찰이나 티베트 등지에서 행해지는 실제 오체투지 자세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먼저 팔꿈치를 구부려 무릎이 닿게 하고 그다음 엉덩이를 약간 위로 든 채 상체를 낮추어 가슴과 이마, 또는 턱을 바닥에 붙인다. 자신을 가장 낮춘 자세를 취함과 함께 겸손함으로 모든 만물들의 존귀함에 경배를 취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생명에 힘을 주는 존재와 교감하는 만트라

(mantra) 등도 겸하여 실행할 수 있다.

이 자세는 다리와 팔의 근육을 강화시키며 가슴을 확장시켜 폐기능의 활성화를 돕는다. 견갑골 사이의 척추 부위를 자극한다. 고관절에 자극을 주어 좌골신경통 등에 도움이 된다.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고난의 길 ‘비아 도로사’에는 지금도 그 돌길을 마치 오체투지 같은 전신 포복으로 기어 ‘성분묘 교회’까지 가는 성직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 왕자는 말하고 있다. 사막은 우리 자신을 발가벗긴다. 오아시스가 있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발가벗겨진 우리 내면의 자연스런 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아닐까?

‘오체투지 자세(아스탕가 나마스카라 아사나)’ 수련을 통해 깊고도 깊은 내 본연의 내면세계와 조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체투지 자세'


숙일수록 낮출수록 평온하고 맑아 진다/세상이 더 순하고/

세상이 더 깊어져/법열(法悅)에 잠기인 채로/영원 속에 침잠한다


●울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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