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평범한 이름들에 대하여.
“여보, 나 끝났어요!”
매일 밤이면 전화가 울린다. 남편은 참 다정한 사람이다.
“엄마, 오늘 저녁 뭐예요?”
매 끼니 메뉴를 묻는다. 딸은 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사장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저희는…”
수화기 너머에서 또 길고 긴 홍보를 시작한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작가님, 이번 달 판매 보고입니다. 확인 후 문의 사항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출판사에 매번 문의하고 싶다. 언제쯤… 만 원이 넘어 인세를 받을 수 있죠?
나는 여러 이름을 가진 평범한 마흔의 대한민국 여자다.
어린 시절, 나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그 꿈 중 이룬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되면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아기의 토가 묻은 누런 옷을 입고 어떻게든 아기를 재워보려는 눈이 퀭한 평범한 엄마였다.
그 시절 남편은 많이 바빴다.
가족보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원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며 날마다 동이 틀 때쯤 술이 떡이 된 채 들어왔다.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건, 자기 사람들에게만은 다정한 마음 때문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쏜살같이 흘렀다.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곧 5학년이 된다.
아직 혼자 집 앞 편의점도 못 가는 아기 같은 따님인데 말이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사장님이 되었다.
사장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 자영업 경험이 있었기에, 사장님 소리가 익숙할 줄 알았다.
그러나 업종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자신감이 부족한 것인지, 사장님 소리를 들을 때면 겸연쩍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1인 디자이너 핸드백 브랜드의 사장이다.
지금까지의 판매는 지인이 카드홀더를 하나 사준 것 이외에는 없다.
온라인 판매는 참… 어렵다.
그래도 다행히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수입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아주 작고 소중한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였다.
A4 서너 페이지의 짧은 단편을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기회가 닿는다면 꼭 출판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 드디어 감격스럽게도 첫 장편소설을 23년도에 완성했다.
퇴고만 꼬박 넉 달이 걸린 처녀작이었다.
비록 10여 곳의 출판사에서 반려받고 노트북의 파일로 남아있지만, 내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역작이다.
그 이후 웹소설에 눈을 떠 현대 로맨스 소설을 집필했다.
어느 작은 출판사의 눈에 띄어 나는 드디어 1질의 웹소설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1년여의 피말리는 퇴고를 겪은 후 절필했다.
퇴고라기보다는 같은 소설을 리메이크로 세 번 정도 다시 썼다고 할 수 있다.
지난했고, 괴로웠으며, 출판사를 찾아가 엎어버리고 싶었다.
물론, 출판사의 잘못은 없다.
그냥 그때의 나의 감정이 그랬다는 것뿐.
그리고 요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를 경험한 후 나는 득도한 사람처럼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이전에도 그런 성격이기는 했으나, 그 전보다 더 사리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 느끼던 조급함은 잠시 휴전 상태로 돌입했고, 있는지도 몰랐던 완벽주의는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던 머릿속은 엄마의 등장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순식간에 깨끗이 정리가 된 듯 말끔해졌다.
이때까지 중 가장 평온하고 온전한 마음이다.
이 맑은 정신으로 나는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 사장의 역할, 작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평가를 매긴다면 50점.
딱 중간이다. ‘참 잘했어요.’와 ‘분발하세요.’의 중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은 인재라고 칭찬받고 싶은 평범한 한 인간.
그렇게 나는 오늘도
“여보, 나 끝났어요!”
을 듣고,
“엄마, 저녁 뭐예요?”
을 듣고,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을 듣고,
“작가님, 인세 임금 됐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을 듣고 싶습니다.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