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는 동그란 뻥튀기를 사주지 않았나.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꽤 잘 따라다녔다.
초등학생 때는 남동생까지 네 식구가 가끔 강원도의 외가를 다녀오곤 했다.
아빠는 절대 휴게소를 들르지 않았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빨리 가서 쉬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남편이 그러고 있으니.
엄마는 그런 아빠를 나무랐다.
아이들이 따라오면 휴게소도 들러 간식이라도 먹고 싶을 건데 그저 빨리 가려고만 한다고.
사실 휴게소의 간식들은 그 나이의 나에게는 특별한 먹거리였다.
알감자, 핫도그, 버터오징어 같은 것들은 휴게소가 아니면 먹기 힘들었으니까.
그 당시엔 고속도로 곳곳에서 뻥튀기를 팔았다.
뻥튀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호객하는 뻥튀기 장사꾼이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말했다.
“뻥튀기나 하나 사.”
그러면 엄마는 창문을 내리고 뻥튀기를 하나 샀다.
나는 동그랗고 큰 원형 뻥튀기를 좋아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구멍을 뽕뽕 네 개 뚫으면 눈, 코, 입을 가진 가면 뻥튀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나는 그 뻥튀기가 가장 맛이 있었다.
담백하고 바삭거리며 입안에서 사라지는 그 맛이 좋았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아빠가 좋아하는 보리 뻥튀기를 샀다.
보리를 조청 같은 것에 버무려 길게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뻥튀기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숫기없는 아이였다.
무엇하나 가지고 싶다 사달라 말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뻥튀기라고 다를까.
나는 입을 한껏 내밀며 엄마가 건네주는 보리 뻥튀기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고소하면서 달큼한 맛이 있었지만, 나는 원형 뻥튀기가 더 좋았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동생은 어느새 가족을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별로 없어 엄마가 ‘같이 갈래?’ 물으면 재빠르게 따라나섰다.
아빠의 취미인 낚시도 곧잘 따라다녔다.
물론 엄마와 나는 아빠가 낚시하는 동안 쑥 같은 것을 캐러 돌아다니곤 했지만.
그렇게 따라다닌 것이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졌다.
우리 가족은 대부도로 칼국수를 먹으러 자주 갔었다.
아빠는 전기 일을 하셔 포터 아니면 스타렉스를 끌고 다녔다.
아빠와 나, 엄마는 앞좌석에 셋이 비좁게 앉아 가끔 대부도에 다녀오곤 했다.
그때까지도 아빠의 보리 뻥튀기 사랑은 여전했다.
중간에 술빵으로 잠깐 옮겨간 적도 있었지만, 역시 드라이브엔 뻥튀기만 한 것이 없다.
내가 내 주장을 펼쳐 원형 뻥튀기를 먹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다.
‘왜 뻥튀기 하나 사달라고 못 해?’ 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의 그런 성격을 정말 싫어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원형 뻥튀기를 쟁취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온갖 모양을 만들어가며 뻥튀기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원형 뻥튀기를 가장 좋아한다.
지금은 이모가 휴게소에서 뻥튀기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이모를 한 번 만나러 갈 때마다 적어도 10봉지의 원형 뻥튀기를 가져온다.
그리고 3봉지만 남겨놓고 모두 나에게 건넨다.
어릴 적 나에게 못 사준 기억 때문일까?
아니,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마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가 내게 건네주는 원형 뻥튀기는 어린 시절 20년 동안 내가 못 먹은 뻥튀기에 대한 값이라고 나 혼자 생각한다.
이걸로 모든 서러움이 끝났다.
지금은 남편과 둘이 맥주 안주로 뻥튀기를 먹는다.
한 번에 한 봉지 반은 거뜬히 먹으니, 엄마와 아빠가 가져다주는 뻥튀기는 금세 거덜 난다.
그리곤 생각해 본다.
내 어린 시절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뻔히 알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것만 사게 되었던 그 마음을.
돈이 없으니 두 개 사서 아이들 하나, 아빠 하나 먹일 수 없었던 그 미안한 마음을.
거실에 가득 쌓인 뻥튀기를 보며 나는 오늘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