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책, 카페, 오란다

by 밝맑음


20대 중반 시절.

나는 틈만 나면 카페에 홀로 앉아 인생의 계획을 끄적이곤 했다.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학창 시절에 용돈도 받아 본 적 없던 나는 막상 돈을 벌어도 쓸 줄 몰랐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돈을 쓰는 유일한 일은 카페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앉아서 나는 인생 전반에 대한 계획을 계속해서 적어나갔다.


그 무렵 나의 꿈은 외국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때의 내 인생은 일과 집을 오가는 짧은 레일 위에 놓인 작고 보잘것없는 전차 같았다.

외국에 나가 살면 지금과는 다른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해외여행 경험은 대학 때 친구와 일본 3박 4일 여행, 인도로의 1달 배낭여행이 전부였다.

그때까지의 나에게 세상이란 광활하게 펼쳐진 자유였다.


해외로만 나가면 모든 것이 수월할 것 같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달리 방도가 없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생기는 날에는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좁은 카페에 앉아 나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몇 년의 도전 끝에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눈물을 머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듯 카페에 앉아 써 내려간 것 중 이룬 일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상에 가까운 것들이었기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카페 들르기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솔로일 때도, 연애할 때도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카페를 찾았다.

카페는 내게 좁은 해외인 샘이었다.

낯선 음악, 나를 모르는 사람들, 여유로운 분위기.


결혼한 후에도 임신, 출산 후에도 변함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한참 산책해서 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면 바로 카페로 향했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1시간 정도 맡겼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손에 이끌려 카페를 찾았다.

월차를 낸 날이면 아이와 둘이 카페 데이트를 즐겼다.

그런 아이는 자라서 먼저 카페에 가자고 조르는 어린이가 되었다.


일을 그만 둔 지금, 학교를 마친 아이를 데리고 오면 자유로운 낮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고, 다리가 아프긴 하지만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를 강아지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기도 하고, 그저 어디 나가고 싶다며 나가자고 조르면 아이와 둘이 정처 없는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카페.

여름이면 수박 주스, 망고 빙수, 아이스티를 마신다.

겨울엔 딸기빙수가 원픽이다.


어릴 적 시장에 엄마를 따라나서면 엄마는 꼭 내 손에 풀빵을 쥐여주었다.

아이도 그때의 나처럼 산책을 따라나서면 꼭 카페에 들르자고 한다.


가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그저 집에서도 하는 영상 시청이나 책 읽기가 전부다.


얼마 전에는 오란다에 맛을 들여 오란다를 파는 카페만 주야장천 간 기억도 있다.

옛날 과자의 맛이 뭐가 그리 맛있는지 ‘오란다, 오란다’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에는 가지 못하고 있다.

가계 사정이 좋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카페가는 것을 제일 먼저 줄이게 되었다.

이제는 가봐야 겨우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니, 아이의 ‘오란다, 오란다’ 타령에 ‘다음에 가자.’라는 말로 응수할 수밖에 없다.


딸아, 기다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오란다를 박스로 사줄 테니.


조금 후에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다 들어와 우리 집 카페를 개시해야겠다.

쌀쌀하고 회색빛 오후에 어울리는 따끈한 핫초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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