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또 책 읽어요?

1년 200권을 향한 도전!

by 밝맑음

귓가에 라흐마니노프가 흘렀다.

읽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아롱아롱 눈물이 고였다.

행복,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이 들끓어 올랐다.

부글부글.

거품은 심장에서부터 부글거려 점점 영역을 넓혀나갔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이 전신을 휩쓸었다.

아주 오랫동안.

책을 읽는 내내.

귓가의 오케스트라가 곡을 끝낸 후에도.



2024년 4월.

나는 5년간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내게는 오랜 꿈이 하나 있었다.

‘나의 일’을 하는 것.


나는 치위생사로 12년을 일했다.

중간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임신이며 육아, 2년의 자영업 기간을 빼고도 어느새 12년이었다.


그 긴 기간 동안 나는 여러 차례 ‘나의 일’을 고심했다.

그러다 핸드백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만나 치위생사와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1년 반.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나의 감정을 만났다.

세상에는 희로애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이 동시에 내 안에서 자라났다.

불안했고 때로는 외로웠다.


최근까지도 그런 감정을 겪었다.

지속되는 내 감정을 나는 끊임없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감정들이 아주 작아지더니 자신이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순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 읽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챌린지의 시작은 어느 기사였다.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1년에 1,000권을 읽는 20대 초반의 괴물 신인.

그 기사를 본 순간 경이로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들었다.


‘나는 한 달에 몇 권이나 읽지?’

많아 봐야 4권?

그것도 소설은 추리소설이 전부이고 대부분은 자기 계발 서적이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나?’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1년에 소설 300권을 목표로 잡았다.

그 작가와 같은 1,000권은 당치도 않은 숫자였다.

책 읽는 것이 워낙 느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책을 읽고 나는 목표를 바로 200권으로 수정했다.

독서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마지막 장이 대체 언제 찾아올까, 생각하며 읽었다.

읽으면서 지금 몇 페이지를 읽고 있는지 꽤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래도 한 권, 두 권, 세 권.

인스타그램에 기록해 가며 꾸준히 읽어 나갔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읽다 보니 모든 소설이 재미있었다.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한 권 빼곡히 수놓아져 있었다.


‘소설은 시간 낭비 같아요. 그래서 소설은 잘 안 읽어요.’

지인에게 말했던 지난날의 내 망언이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삶-물론 가상의 삶이지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꽤 자기성찰적인 행위였다.

등장인물의 다양한 심리가 이해되고, 나라도 저랬을까, 자신을 투영해 본다.

소설은 킬링타임 용이라고 생각했던 오만방자했던 과거의 나를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틈만 나면 책을 읽는 나를 보며 아이도 남편도 물었다.

“또 책 읽어요?”

하루이틀 하다가 말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아이도 남편도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조용히 옆에 와 앉아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가끔 아이에게 같이 책 읽자, 라는 말도 해가며 둘이 앉아 독서하기도 한다.

삶에서 또 다른 작은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년에 소설 200권 챌린지를 시작한 지 이제 곧 한 달이 되어간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12번째 소설을 읽고 있다.

참고로 나는 글을 올리는 며칠 전부터 글을 쓴다.

그러니 아마 지금은 13번째 혹은 14번째 소설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계산상으로는 실패에 가깝다.

하지만 챌린지에 실패해도 괜찮다.

시작하고 도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한 단계 성장했다.

앞으로 한 달, 두 달 지나며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무척 기대하는 중이다.


1년 후, 글을 썼으면 좋겠다.

<챌린지, 성공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전 02화2. 오랜만의 인세 48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