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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Jul 12. 2021

제비가 된 두꺼비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응모작 - 엄지공주

태어나보니 이 모양이었다. 못생기고 싶어서 못생긴 놈 세상 어디 있다더냐. 전생을 못돼먹게 살았던 죗값이라면, 그럼 나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고슴도치 아니 두꺼비도 제 새끼는 끔찍이도 예쁜 것. 아비는 날 사랑해. 나도 이 몸뚱이와 얼굴이 비롯된 내 아비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도 전생을 개떡, 아니 두꺼비떡처럼 살았던 것이겠지. 두꺼비는 나의 운명이다. 거스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운명.

     

아침 단 잠 깨우는 아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 채 떨리고 있었다. 어디 왕파리 대가족이라도 산 채로 잡아오신 건가? 크어다란 입가에서 흐르는 침을 베갯잇에 쓱쓱. 입맛을 쩝쩝.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 숨이 막히고 말았다네. 세상에나 네상에나. 이렇게 생긴 모양도 있었구나. 꽃잎 앞에서 뽐내며 춤추며 나를 비웃던 나비소녀야. 너 이제 내 앞에서 감히 이쁜 척 그만 해야겠다. 호두 껍데기 속 고이 쿨쿨 너의 이름은? 아비가 알려주었다. 엄지란다. 엄지... 내쉬는 감탄에 혹여나 깰 세라, 쿵쾅대는 심장을 억지로 들이 삼킨 숨으로 주저앉히며 처음 만난 너는, 엄지는,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건가 보구나.

     

황홀하여라. 감히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죄스러운 만큼, 이 내 생긴 꼬락서니가 진정 죄로구나. 나를 보자마자 찡그리고 고개 돌린 엄지야. 잘못했다. 잘못했다. 그런데 어찌하느냐. 용서받지 못할 추한 내 겉을 벗겨내고 이 내 속을 꺼내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텐데... 할 텐데.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나 보구나. 이런 것을 서러운 짝사랑이라고 하나 보구나. 네가 너무 아름답고 내가 너무 못생겨서, 이번 생은 글렀나 보구나. 두꺼비 눈물 뚝뚝 오늘은 크어다란 입에서 흐르는 침보다 더 진하게 베갯잇을 적시다가...


저기 하늘의 별빛이 이렇게도 예쁘구나. 이루지 못할 사랑에 풍덩 두꺼비가 빠지고 나니, 세상 만 가지가 모두 다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모르고 살던 감동에 젖어 몽롱해진 두꺼비. 살려! 깜짝이야! 푸드덕푸드덕 곱상하게 생긴 날개 달린 바둑이 무늬 제비 한 마리 두꺼비 눈앞에 떡! 두꺼비야 안녕! 네 마음 다 읽고 왔어. 내가 독심술을 익혔다는 것은 비밀로 해줘! 너와 나 몸을 바꾸자. 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내년의 오늘을 난 만나지 못할 거야. 넌 그보다는 오래 살 거야. 난 빨리 죽고 싶지 않아. 차라리 두꺼비로 살래. 하루라도 더 말이야. 이 날개와 날렵한 몸매 다 너 줄게. 그러니 바꾸자~ 바꾸자~ 바꾸자~ 응?... 그래 바꾸자!!!     


두꺼비가 사라진 자리로 제비가 되었네. 얼레? 그 사이 도망친 엄지야. 그래 잘했어. 이제 더는 두꺼비집에 있을 이유 없지. 아비야. 미안해. 원래 이런 거야.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는 거야. 난 님 찾아 떠나요. 나 대신 두꺼비 된 제비가 마음을 읽는 재주 있다니, 아비 속을 나보다는 덜 썩일게요. 이제 짧아진 내 목숨이 다하기 전에, 아비 얼굴 마지막으로 꼭 보러 내 꼭 오리다. 오리다. 오리다... 메아리로 남긴 불초한 자식의 혼잣말을 뒤로하고, 내 사랑 엄지를 찾아 날아오르다. 여기 하늘을 달리는, 두꺼비였던 제비, 아니 제비 옷 입은 두꺼비.    


찾았다! 저 아래, 그 잘난 척 예쁜 척 나비소녀가 물고기들과 함께 엄지를 시냇물 위로 나뭇잎에 태워 멀리 보내는 이유는 뻔하지... 두꺼비 살던 동네에 저보다 더 예쁜 것이 있으면 안 될 일. 어쨌거나 지저분한 두꺼비 마을에서 엄지를 꺼내 주는 나비야! 생전 처음으로 네게 고맙구나! 근데, 저건 또 뭐야. 두꺼비보다 못생긴 풍뎅이 녀석이 엄지를 구해준답시고 또 어딜 데려가는 거야! 안 되겠다. 내 이 풍뎅이를 그냥. 휘익 숲 덤불을 향해 날개를 틀어 수직으로 낙하하는 제비님을 본 풍뎅이들은 혼비백산. 바람을 가르는 날개 소리에 가려 제비 옷 두꺼비가 풍뎅이들 지껄이는 막말을 듣지 못했음을 풍뎅이들은 감사하거라. 감히 우리 엄지에게 못생겼네, 어쩌네 막말을 하다니! 제비 밥 신세 면한 풍뎅이들이 사라진 숲길 홀로 거니는 엄지에게 다가가...     


고 싶지만, 그러지를 못하네. 이 죽일 놈의 부끄러움이여. 멋진 옷을 걸쳤어도, 타고난 추함에 물든 창피는 벗을 수가 없는가. 나 이제 더는 두꺼비가 아닌데도... 두꺼비는 나의 운명. 껍데기를 고쳐 써도 바꿀 수 없는 천형 같은 이 숙명이여. 그런데 왜 이리 춥지? 제비 녀석 오래 살고 싶어서 털 뽑아 팔아 보약이라도 지어먹은 건가? 옷이 생각보다 얇아. 너무 추워. 기운이 떨어진다. 날개 힘도 떨어진다. 저 아래 엄지도 추울 텐데... 난 추워도 쟤는 추우면 안 되는데. 쟤 옷은 내 털보다 얇은데... 제비가 말한 제비 목숨 그치는 날이 설마 오늘이었나? 아... 힘이 자꾸 떨어진다... 눈... 이 자꾸... 감... 긴... 다. 나 먼저 가거든, 엄지야... 내 남은 털 뽑아서 덮어쓰렴. 널 사무치게 보고는 싶지만, 저승에서 만나면 안 될 일. 넌 내 털 뽑아 입고 꼭 살아남으렴... 까... 무... 룩...     


눈 떠 정신 차리고 보니, 세상에나 네상에나... 꿈에라도 만난다면 원이 없을 님 얼굴이 코 바로 앞에 있다니... 여기가 천국인가 저승인가? 싶다가, 제비 옷 걸친 두꺼비 살아생전 일이라는 것 알고서 눈에서 내리는 뜨거운 눈물. 엄지의 극진한 간호 덕분으로 저승 문턱 밟았다가 뒤돌아 나온 제비, 아니 두꺼비는 고마워라. 목숨을 팔아 바꿔 입은 제비 날개옷, 그 값 톡톡히 하는구나. 내가 두꺼비라면 엄지가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텐데. 내 목숨 값 하나도 아깝지 않아라. 고마워라. 이 옷의 원래 주인, 이제는 두꺼비 탈을 쓴 제비야, 고마워라.     


나랑 가자. 엄지야. 내 이 작은 날개에 널 태우고 저기 따스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겠어! 응? 뭐라고? 안된다니? 아... 제비 옷 두꺼비 쓰러진 동안 저를 살펴준 들쥐 할매 두고 갈 순 없단다. 맘씨까지도 얼굴만치 고운 엄지야. 그래 알겠어. 눈물 머금고 돌아서 이별하나? 아니 근데 이게 먼 소리고? 두더지가 엄지 새신랑이라니? 아니 된다 절대로 아니 된다. 엄지가 울며 만드는 저 옷이 결혼식 드레스가 되게 내버려 둘 수는 내 절대로 없다. 엄지야. 내 너를 데려다 주기만 할게. 이 날개 품 안에 계속 있어달라고 바라지 않을게. 그럴 수도 없단다. 목숨과 바꾼 이 제비 날개... 그 끝 날이 이제 멀지 않았구나. 두더지 말고 근사한 좋은 사람 만나렴. 가자 나와 꽃의 나라로! 거기 꽃의 나라에는 운명의 왕자님이 엄지공주를 기다린다네.     


결혼식 올리던 날, 엄지... 아니 이제 마야가 된 그녀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 다 합쳐도 이기지 못하게 눈부셨더라. 난 감사하더라. 내 생명을 살라 이 날개에 잠시 너를 태울 수 있어서 세상은 참 아름다웠더라. 왕자님아.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두꺼비의 숙명으로 태어난 나 이제 제비의 운명대로 곱디고운 그녀의 모습 이 가슴에 품고 영원으로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엄지야. 건강하렴. 행복하렴. 그동안 추웠던 아픔과 설움, 이제 네 남은 생에 더는 없기를... 혹시라도 남은 그것들 있다면, 내 이 날개에 싣고 저세상으로 가져갈 테니. 그런데, 그전에 두꺼비마을에 들러야겠구나.


아들 모습 못 알아볼 아비에게 먼발치서 마지막 큰절 올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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