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01

by rainon 김승진

네 것이 아니면 그만


슬퍼도 슬퍼하지 마라.

아파도 아파하지 마라.


슬픔도 아픔도 네 것이 아니면 그만.

네 것이 아니니 그만.

가져도 되지 않는 것들.


그 누가 네 품에 던지더라도

끌어안지 마라.

젖어들지 마라.


기쁨과 쾌감이 그러하듯,

슬픔도 아픔도

잠깐 뺨을 스치는 바람.


그러하니, 너와 바꾸지 마라.


씨앗은 꽃으로만 피는 것이 아니다.


도라지꽃이 보고 싶어 사무실 옆 좁은 공터에 반줌 씨앗을 뿌렸다. 한 달이 지난 사이, 비는 예닐곱 번 흙을 적셨고, 햇빛은 스물 하고 서너 날이었다. 도라지 싹은 소식이 없다.


서운하려다 감사하기로 한다. 굶주린 벌레가 갉아먹은 한 끼 식사였다면, 지나가던 새가 파먹은 간식이었다면, 그래도 그래서 더 다행이다. 눈요기보다 배요기가 더 요긴하니까.


그렇게, 씨앗은 벌레의 숨결로 새의 날갯짓으로 피어난 것이다.


빗방울이 내리는 자리


구름과 작별한 빗방울은

그 내릴 자리를

제 바람(願)대로 할 수 없을 것.

그저 바람(風)이 정하는

그의 마지막.


구름 속 제 살았던

그 품성 닮은 곳으로

그 모양 기억하는

어느 바람결이

이끄는 것.


빗속 담배연기로 뱉는

혼잣말.

그 어느 날 나는 어디로 내리려나.

꽁초 가득 재떨이 깡통에 뛰어드는

빗물아. 바로 나구나.


그래도 기꺼울 테니, 하나만 바라자.

내 알고 아끼는

그 아름다운 모두는

늘 고운 봄 단풍 위에

보시시 맺히거라.


바람이 흘린 눈물


실비가 흩날린다.

눈가를 적신다.


바람아. 너도 우네.


다행이지 뭐야. 나 혼자 슬픈 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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