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27

by rainon 김승진

할슈타트(Hallstatt)


호수 속에는

똑같은 세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세(來世)로 들어가는

소름 끼치는 투명함이

실재(實在) 뺨치는 고혹스러운 자태로

뛰어들고픈 미친 충동에 손 내밀어 이끄는


호수 위

자잘한 물결은 바람의 부채질이 그려낸

영롱과 몽롱이 함께 추는 유혹의 왈츠.


그 선율에 취할 뻔.

가까스로 도망쳐 고개 들다 만난

교회 첨탑 위 하늘로 비행하는 한 줄기 바람결.


그래.

뺨을 스치고 잎사귀를 토닥이는

공기의 유영(遊泳),

숨 붙은 자아만 자각할 수 있는 이 삶의 선물이라.

아무리 아름다운들 물속에는 없는 것이 바람이라.


붙어 있는 목숨, 멋없어도 고마우며

다디단 바람결에 날리는 나뭇잎 왈츠 아래

올라탄 버스는

하늘과 바람의 향기를 오선지에 담았던

모차르트 살던

잘츠부르크로 달렸다.


두릅나무 꽃 피려 할 때


늦은 장마 살짝 틈새로

두근두근 조심스레

피어날까 망설임


언제 쏟아질지 모를 후드득

빗방울에 놀라 수줍게

혹여 도로 숨어버릴까 봐


언니 두릅 잎 고운 마음

은빛 햇살 머금은

초록 우산 펼쳤다.


1분 뒤 쏟아지다.


새벽 다녀간 빗방울들

아직 꽃잎 사이

고인 채로

아주 잠깐


먹구름 틈 희미한 광채

두팔 벌려 맞는

짧은 위안

너무 잠깐


그 잠깐 시샘하나

잔인하게

쏟아지는

다시 장마


기억이 부르는 날에

<부활 - 기억이 부르는 날에>에 더하다.


기억이란...

누더기.

더는 부끄럽기 싫은

무의식의 부끄러움이 파내 버린

빈 구멍 그 틈으로, 외려

맨 살 드러나는 수치심의 도돌이표.


기억이란...

화려한 누더기.

찬란히 빛났던 어느 날의 벅찬

마음이 회상으로 덧칠한

그때 그 맑은 하늘보다도, 오히려 더 하늘스러운

켜켜이 감동 쌓인 추억은 바래지 않을 아름다움.


화려한 누더기 걸치고

내 잠 속으로 잠기는 23시 57분.

기억이 너를 부를 때

끝나버린 사랑과 끝없는 이별은

오늘 이 꿈속에서

아름다운 도돌이표 위로... 홀로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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