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지. not easy.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1화

by rainon 김승진

6월이다. 토요일이다. 아침이다. 낡은 책상의 나무판을 지탱하는 쇠파이프 다리 나사인지 뭔지가 헐거운 것이 영 신경 쓰였다. 끼긱 끼긱 책상은 상하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귀신이 손톱으로 창문을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킥킥 웃음을 토해냈다. 대체 어느 나사 놈이 풀려 있길래... 짜증의 근원을 찾으려 고개를 숙여보니, 찾던 원인 말고도 또 하나가 더 있었다. 오른쪽 상단 책상다리 발굽이 위로 살짝 들려 있었다. 이건 책상이 아니라 시소다. 시소. 책상에 올린 팔꿈치에 힘을 줬다-뺐다 리듬에 맞춰, 바닥을 딛던 왼쪽 하단 쇠파이프 다리와 오른쪽 상단의 그것이 쿵쿵 시소질을 해댔다. 그러자 뒷자리 사람이 큰 소리로 혀를 찼다. 아차차 싶다. 귀신이 손톱으로 창문을 긁는 소리보다 더 날카로울 뒷사람이 어쩌면 펜으로 내 등을 찌를 수도 있겠다 싶다. 흠칫 놀라 시소질을 멈춘다.


좀 일찍 올걸... 사람이 별로 없을 때 그나마 상태가 덜 나쁜 책상으로 살짝 바꿔두는 건데... 하지만 그 후회 섞인 잔머리도 어차피 소용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보니 책상 오른쪽 귀퉁이마다 친절하게도 수험번호와 이름이 붙어 있구나. 떼어 내기도 어렵게 종이쪽은 나무에 단단히도 밀착되어 있었다. 그래. 이것도 다 운이지. 오늘 오전 취직에 성공하느냐 마느냐 운명은 결국 이 거지 같은 책상을 만날 팔자였던 것이다. 책상과의 씨름을 단념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한국사 파이널 최종 정리. 반만년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달달 외우는 것도 제발 오늘이 파이널이기를...


수험번호 01034014, 성명 안이지. 책상에 붙은 종이쪽이 안이지를 노려보았다. 안이지도 제 이름을 째려보았다. 바늘 같은 둘의 눈빛이 책상 위 허공 어디선가 부딪치며 번뜩였다. 제 이름 석자가 가장 무거운 이 공간. ‘지방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장’이라고 커다랗게 분필로 쓰여 있는 녹색 칠판을 향해 시험감독관 둘이 성큼 걸어 들어왔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 지금 얼른 다녀오세요. 5분 후부터는 시험장 출입이 금지됩니다. 절대 못 나갑니다.”


감독관이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이지는 수험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문제책과 OMR 답안지 배부 직전, 교실 밖 복도 저편에서 뭔가 소란이 일어난 듯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도 아까웠다. 답안지에 인적사항을 표기한 후, 수험생 안이지는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았다.


올해 한산시 9급 공채 속기직은 단 1명만 뽑는다. 시의원 7명인 조그만 지방 소도시 의회에 속기직은 2명이 필요 없었다. 그마저도 이번 공채 선발은 20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최소 20년~30년 동안은 속기사를 뽑을 일이 없을 것이 뻔했다. 단 한 번의 기회, 사격수는 23명. 경쟁률 23대 1.


안이지. not easy. not easy한 스물여섯 해 삶은 오늘따라 더욱 쉽지가 않았다.


시험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지난 1년 간, 죽지 않을 만큼만 자고 공부에 매달린 고생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파본, 누락 여부를 확인하려 문제 책 전체를 스캔하는 안이지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빛났다. 아직 첫 문제도 풀기 전에, 이미 안이지는 합격을 확신했다. 미리 감격하지 말자. 한 명밖에 안 뽑는 시험이다. 한 문제도 틀려서는 안 된다. 침착을 되찾은 안이지는 문제 책 첫 페이지로 돌아와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순풍 타고 바다 위를 미끄러져가는 요트처럼 부드럽고 경쾌하게 안이지의 파란색 볼펜은 자신 있게, 유쾌하게 문제 책을 누볐다. 파죽지세. 그러나 파죽지세는 짧았다. 시험 시작 후 정확히 18분이 경과한 시각. 아. 욕이 나온다.


제대로 18스러운, not easy한 상황이 됐다. 배가 아프다. 설사다.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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