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한테 무슨 일...이지?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2화

by rainon 김승진

시험 시작 후 정확히 18분이 경과한 시각. 아. 욕이 나온다. 제대로 18스러운, not easy한 상황이 됐다. 배가 아프다. 설사다.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이지가 인생 최대 위기를 맞닥뜨리기 2시간 전. 지방행정서기 유태연은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 근무지는 시청이 아닌 관내 중학교다. 공노비라고 불리는 지방공무원에게는 주말의 온전한 휴식이 쉽지 않은 일이다. 봄에는 산불 비상 대기, 여름에는 호우 특보 대기, 가을에는 각종 축제성 행사 주말 동원. 겨울잠 자는 곰이나 긴긴 겨울방학이 허락되는 교사들을 부러워 하게 하는 것은 폭설 대기 근무. 그래도 그나마 주말 시험 감독은 일하는 시간에 비해 수당이 짭짤하기에 직원들 선호도가 높은 편. 시험 감독관 주의사항을 전달받고서, 감독 조원 유태연은 감독 조장 선배 뒤를 따라 문제 책과 OMR 답안지가 든 봉투를 들고 17 시험실로 향했다.


불과 3년 전에 태연이 시험을 치렀던 그 학교, 바로 그 교실이다. 9급 공채 시험을 보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성깔 더러운 학생이 발로 찼을 교실 나무 문짝의 깨진 채 움푹 파인 자국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공수 교대. 감독관이 되어 다시 이 교실에 들어서게 될 줄이야. 살짝 젖어드려는 감회를 깨고 조장 선배가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 지금 얼른 다녀오세요. 5분 후부터는 시험장 출입이 금지됩니다. 절대 못 나갑니다.”


OMR 답안지와 문제책을 배부하려는데, 바깥 복도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옥신각신 실랑이 속에 욕설과 고함이 오가는 것 같았다. “답안지 나눠주는 건 내가 할 테니 어서 나가봐.” 조장 선배에게 답안지 뭉치를 넘기고 태연은 교실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시험장 입실 마감시각을 넘긴 한 수험생이 제발 들여보내 달라며 복도 대기 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입실 마감시각이 되면 건물 1층 현관을 폐쇄할 텐데... 어떻게 뚫고 들어왔지? 어쨌든... 하지만, 너무나 딱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언뜻 보아도 마흔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공시 장수생. 울먹이며 발길을 돌리는 뒷모습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태연은 다시 시험실로 들어갔다.


시험, 특히 9급 공채 시험은 무자비하다. 단 100분, 단 100문제로 길게는 수년간의 노력이 가차 없이 평가된다. 먹고사는 일의 난이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하늘로 치솟으면서 말단 공무원의 인기도 그와 나란히 하늘을 찌르는 세상. 나도 공무원이지만, 이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철밥통 하나를 챙겼으니 다행이다... 마치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의 수험생들을 보며 태연은 새삼 안도했다. 숨 막히는 수험생활. 그 삽질을 다시 안 하는 것만도 감사한 일.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실 안의 공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수험생들이 시험지에 코를 박기 시작하자, 나이 지긋한 배불뚝이 조장 공무원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았다. ‘에휴... 한심한 인간. 수당이 아깝다.’ 웹툰에 빠져든 조장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태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혼자 감독하게 생겼네. 인간아, 만화는 집에 가서 볼 것이지...’


부정행위를 하는 응시생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태연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자칫 이 교실에서 사고라도 나거나, 그래서 항의성 민원이라도 터지면 골치 아픈 일이다. 그런데... 상하좌우로 시선을 교차하며 응시생들을 관찰하던 태연의 눈에 교실 중앙 책상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찌푸린 미간 아래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6년 만인가...


더 예뻐졌구나... 안이지... 그런데... 그런데... 네가 직장 동료가 된다면, 그래서 혹여 자주 마주치게 된다면 나 좀 힘들 것 같아. 너 시험 떨어지면 안 되겠니? 아니, 미안해. 너도 고생해서 공부했을 텐데... 부디 합격했으면... 아! 어차피 여긴 속기직렬 시험장이다. 백 프로 의회사무과에서 근무하게 될 테고, 나는 뭐 거기로 전보될 가능성 별로 없으니 같은 사무실에서 일할 일은 없겠구나. 그래, 실력 발휘 잘하길... 근데 왜 속기직으로 응시했지? 태연은 고개 숙인 이지를 계속 응시했다. 모든 수험생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가끔 깨닫고 눈을 돌리기는 했지만, 태연의 시선은 자꾸만 이지를 향했다. 그런데...


이지가 이상하다. 차츰 파랗게 질려가는 얼굴이 식은땀에 젖고 있다. 이지...한테 무슨 일...이지? 태연도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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