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이 만나 불꽃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3화

by rainon 김승진

태연의 시선은 자꾸만 이지를 향했다. 그런데... 이지가 이상하다. 차츰 파랗게 질려가는 얼굴이 식은땀에 젖고 있다. 이지...한테 무슨 일...이지? 태연도 당황했다.


도대체 왜 저러지? 그녀의 손짓, 발짓 하나까지 온 마음으로 감싸 안았던 6년 전으로, 유태연은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아픈 건가? 당장 이지 옆으로 다가가서 뭐가 문제인지 바로 해결해 주고픈 충동을, 태연은 간신히 억눌렀다. 마침 그때 웹툰 삼매경에서 잠깐 깨어난 배불뚝이 유적관리팀장이 낮은 목소리와 함께 태연을 쿡 찔렀다. “응시생들 답안지에다 감독관 서명해. 지금.”


빨간색 모나미 볼펜을 든 태연은 수험생들이 앉은 자리를 가장자리부터 중앙을 향해 달팽이 바퀴 그리듯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OMR 답안지의 성명, 수험번호, 문제 책형 마킹 상태를 확인 후 서명하면서 차츰 응시생 안이지에게 다가갔다. 힐끔힐끔 훔치듯 던진 시선에 잡힌 그녀의 상태는 더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은땀에 젖은 얼굴과 어깨는 파르랗게 떨리고 있었다. 덩달아 태연의 신경도 곤두서고 있었다. 아까 이지를 6년 만에 처음으로 바라본 순간, 다시 마주하는 것조차 못내 아파서, 헤어진 옛 연인이 이 시험에서 낙방하기를 바랐던 어쩔 수 없는 못된 마음이 후회스러웠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컨디션을 되찾아서 시험을 무사히 치러야 할 텐데...


수험번호 01034014, 마지막으로 응시생 안이지의 책상을 향해 왼쪽 옆에서 천천히 감독 조원 유태연이 다가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책상 좌측 상단 귀퉁이 그녀의 OMR 답안지에 서명을 했다. 가만히 파란색 볼펜을 손에 쥔 채로 머리를 숙인 안이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1초, 2초, 3초... 그녀의 고개 숙인 옆얼굴을 근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태연은 화들짝 놀랐다.


분명 책상에 엎드리듯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안이지가 고개를 들고 태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100미터 전력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고개가 움직이는 것을 전혀 못 봤는데, 영화로 말하자면 필름 중간에서 컷들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최소한 100 프레임이 증발한 것 같았다. 공포 영화 속 화면을 향해 몇십 걸음을 순간 이동해서 관객에게 달려드는 귀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을 빠져나오려는 외마디 비명을 태연은 가까스로 꿀꺽 삼켰다.


정작, 유태연보다 더 놀란 것은 안이지였다. 간신히, 기적 같게도 급박한 생리적 현상을 가라앉힌 이지는 똥그란 눈으로 태연의 똥그란 눈을 쳐다보았다. 6년 만에 만난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만난 자리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터졌다. 이지는 답안지 감독관 서명 란의 이름을 내려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 이름의 주인인 옛 연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 있어?” 배불뚝이 조장이 안이지의 자리로 왔다. “아... 아닙니다. 이 분께서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있어서...” “이젠 괜찮아요.” 소곤소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두 감독관은 교탁으로 돌아갔다. 배불뚝이 유적관리팀장도 이제는 스마트폰을 닫고 응시생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시, 유태연은 감독관 임무에 집중했지만, 틈틈이 그의 시선은 안이지를 향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이지의 파란색 볼펜은 거침이 없었다. 한 문제를 푸는 데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저 속도라면, 찍는 게 아니라면, 합격이겠구나. 마지막 문제의 답을 체크한 안이지는 다시 문제 책 첫 장을 펼치고 확인사살에 들어갔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응시생 안이지가 OMR 마킹을 완료하고서 3분 후,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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