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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Sep 07. 2021

조르바, 그 자유의 날개에 건배를

시대를 초월하여 이제는 세상 어디든 도처에 그대의 이름이 떠다니는 것을, 조르바 그대는 알고 있는지요? 조르바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랍니다. 그 모든 속박을 유쾌하게 벗어던지는 해탈과 자유의 상징으로, 이제 그대는 그대의 삶이 머물던 당대를 넘어, 크레타 섬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아름답게 헤엄치는 ‘조르바’가 되었습니다.


나는 ‘삶’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복잡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마도 나는 영영 찾지 못하고서 그 어느 날엔가 이 간단하고도 복잡한 삶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은 나를, 그리고 많은 이들을 서점으로 이끈답니다. 서가 앞에 서서 난 이른바 ‘제일 잘 팔리는 책들’을 펼쳐 읽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리고 분명 ‘다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오만, 서로서로 베껴서 말 그대로 대동소이한 내용들의 짜깁기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들은 참 당당하게도 말합디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하니 이렇게 살아라!” 자신 있게 삶의 ‘답’을 가르치려 드는 그 책들을 덮으며 왠지 난 귓불까지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창피함을 대신 느끼곤 한답니다.


당신의 친구 카잔차키스. 당신만큼이나, 하지만 당신과는 조금 다른 방법과 모습으로, 삶과 세상 깊은 곳을 꿰뚫어 보았던 그는, 당신과의 추억을 담은 책 속에서 읽는 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디다. 이런 걸 두고 아이러니라고 하지요. 후세가 거장으로 인정하는 작가는 인생을 논하는 것을 정작 조심스러워하는데, 그럴싸한 미사여구의 편집으로 찍어낸 인스턴트 에세이들은 나름 고매한 삶의 훈수를 아끼지 않다니 말입니다.


당신의 친구 카잔차키스는 나에게, 그리고 그대의 삶을 읽는 후세의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대신에, 그 질문, 그 자체를 우리에게 풀어 그려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바로 이름인 책. 그리스인 조르바.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피레아스 항구에서, 조르바 당신이 카잔차키스를 만남. 그것은 무겁고도 아름다운, 아름답기에 무거운 운명과 인연이었지요. 살아온 삶의 과정도, 성격도 완전히 달랐던, 나이 차이도 컸던 당신들 두 사람이 크레타 섬에서 보낸 그 나날들의 풍경은 너무나 달콤하고 멋졌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이 구경꾼은, 새롭게 펼쳐지는 크레타 섬 경치와 일상과 사건들을 아끼고 아껴 읽고픈 마음에 자주 시선을 멈추고 몇십 장 앞으로 돌아가서 활자들을 곱씹고는 했으니까요.


낮에는 갈탄을 캐고 밤에는 포도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당신들의 삶. 그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면서도 오롯이 담긴 책장마다에는 삶과 세상을 향한 진지하며 따뜻한 눈빛이 묻어 있었습니다. 오르탕스 부인, 롤라, 마놀라카스, 미미코, 자하리아...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크레타 섬사람들이 오가며 펼쳐내는 삶의 잔가지들은 조르바 당신과 당신의 친구 카잔차키스가 깊은 뿌리로, 아름드리 굵은 기둥으로 세운 인생의 나무를 더욱 풍성하게 하더이다. 그리하여 그 나뭇잎을 스치며 노래하는 크레타 섬의 향긋한 바람은 읽는 내내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질문 자체를...


당신의 친구 카잔차키스는 금욕과 이상을 추구하는 신실한 지식인이었지요. 끝도 해답도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고뇌와 번민의 수렁 속을 휘저으며 참다운 삶의 길을 찾으려고 했지요. 당신과 함께한 날들 속에서, 결국 당신의 친구는 당신을 조금씩 닮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을 즉흥적으로 사고(思考)하며 사고(事故)를 치는 조르바 당신은 그야말로 만사에 거침이 없습디다. 미안한 표현입니다만, 차라리 광기에 가까운 당신의 자유분방함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질그릇 만드는 데 푹 빠진 나머지 물레를 돌릴 때 왼손 검지가 자꾸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손가락을 도끼로 자르고, 조국 그리스를 위해 불가리아인, 터키인들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벌인 무용담을 서슴없이 떠벌이고, 동침한 여인들의 체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 썼던 일화를 자랑하는 당신의 기가 막힌 기행(奇行)이 솔직히 좀 거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언뜻 미치광이로만 보이는 조르바 당신의 ‘아무렇게나, 내 마음대로’ 삶 속에는 뚜렷한 주관과 철학이 스며져 있음을 이내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일견 방탕과 방종으로 보이는 당신의 삶은, 바로 두 가지에 철저히 충실해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오. 바로, ‘순간’, 그리고 ‘자기 자신’ 결국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이 둘의 결합인 것이지요. 언제 끝날지 모를 삶이기에 스스로의 존재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은 오직 이 ‘순간’뿐이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외계, 즉 타자(他者)일 테니 삶이 존재하는 영역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 한 존재가 위치하는 것이며, 그 가장 미세하고 정확한 좌표는 바로 ‘순간의 자기 자신’이지요. 그 둘이 교차하는 곳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지가 바로 순수한 ‘자유’라는 사실을... 나는 조르바 당신의 삶에서 배웠습니다. 결국... ‘자유’라는 것은 ‘순간’과 ‘자아’에의 헌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을 낙타처럼 무작정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자처럼 무조건 거부한 것도 아닙니다. 조르바 당신은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넘어서서 그 자체로 삶의 기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순간을 철저하게 즐긴 자유로운 초인(超人)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막바지. 망해버린 갈탄 광산 앞에서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가 함께 웃으며 즐겁게 춤추는 모습에서, 나는 초탈과 달관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충동을 느꼈답니다. 나도 조르바 당신과 함께 춤을 추고 싶다는 그 강렬한 바람은 내 심장을 벅차게 하였답니다.


당신의 뜨거운 눈물에 함께 젖었던 그 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오르탕스 부인이 세상과 작별하는 그 마지막. 그녀 삶의 시계가 멈춰가는 그 곁을 지킨 당신의 눈물이 내 마음으로 흘러 들어와서 내 눈으로 쏟아지던 그 슬픔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말했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크레타 섬. 그곳에서 당신과 당신의 친구 카잔차키스와 뭇사람들이 엮어 펼쳐내는 사건들, 사람들의 움직임과 시선 하나하나에 그 질문 ‘삶이란 무엇인가?’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정답이 없는 해답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을 읽는 이 스스로에게 던지도록 만드는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의 첫 장을 폈던 순간의 우연은 결국 내게 고마운 필연으로 남았습니다. 조르바 당신, 그리고 당신의 친구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크레타 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지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지금 저 하늘 어디에선가, 조르바 당신과 카잔차키스는 영원한 자유 속에서 춤추고 있겠지요. 와인을 사랑했던 그대의 날개는 아마 포도주빛이지 않을까요. 그 어느 날엔가 나도 그 영원한 자유 속으로 날아가게 되어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대의 그 날개에 함께 건배하고 싶습니다. 그럼 조르바, 그날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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