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월의 애벌레 – 제27화
사내 메신저 창 상단 도구 아이콘들을 죽 살펴보던 이지의 눈에, 전체 직원들을 메시지 수신 대상으로 만드는 체크박스가 보였다. 이지가 체크박스를 클릭했다.
‘강혁찬 감사담당관님. 상사에게 인사할 때 웃지 마라고 하신 그 가르침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그런데 담당관님께서 지난번 저희 술집에 오셨을 때, 일행 분을 호텔로 모셔가서 성접대하라고 제게 종용하셨던 것 기억하시죠? 술집에서 일한다고서 함부로 막 대할 수 있다는 담당관님의 생각도 좀 정!숙!한! 방향으로 고치시면 어떨지 조심스레 조언드립니다.’
“헉!” 공기를 찢는 짧고 날카로운 탄식과 함께, 사무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하던 태연이 이지를 향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의사팀장 지선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를 쳐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이지에게로 쏠렸다. 모두의 눈은 휘둥그레진 상태로.
“어머나. 제가 실수로 그만... 감사담당관님에게 메신저 답을 한다는 게... 아... 이를 어쩌죠?” 짐짓 당황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이지의 목소리는 그러나 침착했다. 태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안이지. 너 일부러 그런 거, 나는 안다. 근데 대체 감사담당관이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자폭하면서까지 엿을 먹이는 거니?
그 시각 한산시청 근무 전 직원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안이지가 대체 누구야? 술집 여자야?” “조직도 보니까 오늘 처음 출근한 신규 직원인데?” “햐... 강혁찬, 이 쓰레기. 밖에서도 그러고 다녔나 보구나.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아. 이러고도 남을 인간이지.” “회식 자리에서 젊은 여직원들한테 듣기 짜증 나는 음담패설 지껄이던 놈.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구나. 제 버릇 고양이 주겠어?” “근데, 메신저 전체 수신 체크박스를 일부러 클릭하고 친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랬겠어? 간이 아무리 커도...” “근데 얼굴 무지 이쁘네? 몇 살이야?” “야, 야. 이름 보면 모르겠냐? 쉽지 않은 여자야. 안이지. Not Easy 라잖아.”
요런 맹랑한 꼬마가 세상에 다 있네. 이지의 메신저 답을 보고 기가 막히고 만 감사담당관 강혁찬의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아. 네. 시장님.” “당장 내 방으로 와!” 방금 이지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시청 전 직원들에게 날아갔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로 강혁찬은 시장실을 노크했다.
“너. 밖에서 행실이?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냐? 응?” 어리둥절 눈만 껌뻑거리는 강혁찬을 향해 현병규 시장이 이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강혁찬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붉게 물들다가, 당황으로 파랗게 질리다가, 두 색이 섞여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구를 성접대하라고 주접을 떨었냐? 엉?” “아... 그게... 저...” “대답 똑바로 안 해? 대체 술집에서 무슨 지랄을 했길래, 오늘 처음 출근한 여직원이 이런 소리를 다 하냐고?” “아... 저... 한 석 달 전쯤에, 봉술이 형님이랑 어느 바에 갔다가... 제가 그날 좀 술이 많이 취해서 그만...” “봉술이? ...... 에휴... 그놈이나 너나 언제 사람 될래? 나가! 이 새끼야! 한 번만 이런 잡음 나오면 너 아웃이야! 엉!”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혁찬 사무관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 참 깜찍한 놈이네. 햐... 이걸 어떻게 조지지?
사내 메신저로 전 직원들 앞에서 감사담당관에게 개망신을 주면서, 첫 출근 8시간 여 만에 자신의 이름을 시청 모두에게 확실하게 알린 안이지는 첫 퇴근을 준비했다. “아버지한테 갈 거지? 병원까지 데려다줄게.” 태연이 자신의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사무실을 나서 의회 건물 앞 주차장으로 향하던 이지와 태연은 다시 세연과 마주쳤다. 또각또각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 막 차에 오르려던 장세연 의원이 나란히 퇴근하는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의원님.” 유태연이 고개 숙여 장세연에게 인사하는 동안, 안이지는 멀뚱히 세연을 쳐다만 보았다. 그런 이지와 다시 눈싸움을 하려다 세연은 그냥 피식 웃고는 자신의 쥐색 SUV에 올랐다. 그리고,
의회 청사 중앙현관 회전문을 막 빠져나온 기은석 의원이 그 세 고교 동창생들 사이 묘한 분위기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