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停會)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59화

by rainon 김승진

“자, 뭐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살생부가 진짜 있었느냐, 가짜냐... 뭐 그건 본질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직원들 대다수의 여론을 근거로 말하는 겁니다. 재선 되기 전, 지난 임기 동안 현병규 시장의 직원 인사는 참사였다, 개판이었다. 이게 공직사회의 압도적 의견입니다. 자기 사람들만 초고속으로 승진시키고, 좋은 자리에 앉히고, 묵묵히 일만 하는 선량한 직원들은 한직이나 일 더럽고 힘든 곳으로 좌천시키고,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시장 측근들과 친분이 없다는 이유로 승진 순위에서 밀려나고...”

“위원님!!!”


“저, 아직 말 안 끝났습니다!!! ... 이런 엉터리 인사 때문에, 도 전출이나 타 시·군 전출 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것 보세요! 위원님!!! 말씀을 좀 가려서...”


“이것 보세요? 지금 이것 보세요... 라고 했어요? 자치행정과장!!!”


일순 험악해진 분위기를 깨고 장세연 의원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정회를 신청합니다.”


“원활한 감사 진행을 위해 잠시 정회를 한 후, 11시 10분부터 감사를 재개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삑! 탁! 시장실 벽걸이 TV 전원을 끈 현병규 시장은 테이블에 리모컨을 내던지고 담배를 물었다. 두어 모금 연기를 마시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대고 현병규는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거... 시의원 기은석이 프로필이랑 신상 파일 찾아서 가져와. 지금 바로! 주량은 얼마인지? 잘 처먹는 건 뭔지, 가리지 말고 다 알아봐!!!”


“어제 드신 새우가 체하셨어요? 왜 그래요?” 날카로운 장세연 의원의 핀잔을 못 들은 척, 기은석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의회 청사 밖, 흡연 구역. 씩씩거리는 자치행정과장의 담배에 인사팀장이 불을 붙이며 눈치를 살폈다. “과장님. 너무 흥분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이제 막 임기 시작됐다고, 기선 제압하려고 살살 약 올리는 겁니다. 말려 들면 절대 안 됩니다.”


“저 새끼, 몇 살이야?” “올해 서른둘이랍니다.” “내 큰 놈이 서른여섯이야! 어디 막내아들뻘 되는 자식이 호통이야??? 지가 무슨 국회의원이나 돼??? 코딱지만 한 시골 시의원이 뭐, 대단한 감투야??? 새파랗게 어린놈 새끼가 그냥!!!”


박봉술은 방청석 맨 뒷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우리신문사 홈페이지. 기사 검색. “지방선거 임박 시점, 공무원 살생부 나돌아... 현병규 후보 측 작성 의심 정황” 가가멜 정재호 기자의 석 달 전 기사를 쓱 눈으로 다시 훑어보던 박봉술의 시선이 전면 의장석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이지가 막 속기석에 다시 앉고 있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매를 느낀 건지, 이지가 박봉술을 쳐다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 계집애 핸드폰에 들어 있을 그날 밤 바 <쁘렘>에서의 자신의 목소리... 만취한 상태에서 대체 어디까지 블랙리스트 얘기를 떠벌였던 걸까... 지금이라도 저 꼬마애 핸드폰을 없애버려야 하나... 너무 늦었나...


의장실에 모인 7명 의원들은 4대 3으로 나뉘어 팽팽한 줄다리기 중이었다. 현병규 시장과 같은 새정치당 소속인 장세연, 윤기호 두 의원과 친 현병규 성향의 무소속 의원 한 명이 기은석 의원을 공격했다. “노조 게시판에 올라온 글 몇 개가 직원들 여론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나요?” “노조가 나서서 아니라고 부인했잖아요! 일개 지역신문사에 난 기사 하나, 소문으로만 도는 얘기가 행감장에서 거론할 만큼 가치가 있어요? 의회 품격을 생각해야지!!!” “그 양반, 내일모레면 환갑이야. 정년 얼마 안 남은 사람한테 그렇게 면박을 줘??? 정도껏 해야지!!!” “이따 회의 속개하면, 기 의원, 당신이 먼저 정중히 사과하세요!!!”


기은석이 몸담은 평화당 소속 의원 4명도 지지 않았다..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젭니다!!! 당신들도 사실 다 잘 알잖아!!! 현병규가 그동안 인사권 가지고 망나니 깡패짓 한 거, 그건 사실이잖아요!!!” “먼저 인상 구기고 태도 불손한 건 자치행정과장이야!!! 나이가 서른이건, 스물이건, 시의원은 의원이라고!!! 시험 쳐서 들어온 공무원 놈들은 시민들 표 받고 들어온 의원님들 앞에서 공손해야지!!!” “이참에, 현병규 버르장머리를 좀 고칩시다. 우리 처조카가 여기 한산시청 공무원이야. 걔 입에서도 나온 말이야. 갓 들어온 9급 말단 직원들도 현병규 측근들이랑 술 약속 잡으려고 번호표 뽑아서 줄을 선대요!!!”


“저기... 잠시만.” 말없이 듣고만 있던 기은석 의원이 손을 들고 입을 열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여섯 명 시의원의 눈이 일제히 기은석을 향했다.


“현병규 시장 직접 출석 답변.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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