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가시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64화

by rainon 김승진

“똑똑똑” 정재호는 심호흡을 하고 현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삼단봉을 펼쳤다. 삼단봉이 펴지는 소리를 인기척으로 알아들은 걸까. 노크의 주인공이 천천히 신문사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야?” 삼단봉을 쥔 정재호의 오른팔에 힘이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한밤중의 방문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형...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목마르다... 물 한 잔 주라. 재호야.”


“현병규 한산시장은 단상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 계십니까? ...... 기은석 감사위원 질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행정사무감사 시작 전에, 증인선서를 하셨죠? 시장님.”

“네.”


“기억하시죠? 본인이 직접 어떤 서약을 하셨는지를.”

“뭐, 대략...”


“대략...? 그럼 제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죠. 대략적이지 않게. 음... 어디 보자... 「선서! 본인은 한산시의회가 관계법령에 따라 실시하는 이번 행정사무감사에 임하며 성실하게......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서약하고 이에 선서합니다. 시장 현병규.」”

“......”


“제가 지금 드리는 질문에 답변하시기 전에”

기은석 의원이 잠시 말을 멈췄다. 일부러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시장님 본인께서 직접 낭독하셨던, 그 선서문의 내용을 꼭, 한번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의원님. 질문 빨리 하시죠.”


오늘 박봉술은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았다. 그간 항상 맨 뒷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보니, 다른 각도로 시야에 잡히는 오늘 본회의장 전경이 새삼 낯설었다. 기은석 의원의 뒤통수와 현병규 시장의 입을 번갈아 지켜보던 박봉술의 시선이 밑으로 떨어졌다. 대체 어디서 박힌 거야? 오른손 새끼손톱에서 2mm 아래 손가락에 박힌 가시는 딱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영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손가락 살갗 속으로 파고든 잔가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지 않는 잔가시... 45년 전, 한산시장통 밑바닥을 기어 다니며 하루살이로 살던 박봉술의 어깨에 멘 구두닦이 통은 손때로 새까맸다. 어린 박봉술은 비 오는 날이 싫었다. 구두를 닦으려는 손님도 없었지만, 그보다는 구두닦이 나무통 표면에서 습기에 찢어진 나뭇결들이 우둘투둘 일어나 손가락을 찔러대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잘 보이지도 않는 잔가시들은, 빼내려 기를 쓰면 쓸수록 살점 안으로 깊숙하게 숨어버렸다. 어린 박봉술은 그때마다 겁이 났다. 터럭처럼 가는 나뭇조각들이 살 속으로 파고들다 혈관으로 들어가면 어쩌지? 피 속을 돌고 돌다가 심장에 박히면 어떡하나?


다시 고개를 든 박봉술의 눈에 고 안명훈의 눈매를 쏙 빼닮은 속기사 안이지가 늘 그렇듯 딱딱하게 메마른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한 채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잔가시. 잔가시 같은 계집애.


“어제 자치행정과장 질의응답 내용을 다 알고 계실 테니... 간단하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석 달 전, 선거 직전, 일부 언론에도 보도가 됐던, 시장님과 경쟁했던 손철기 후보를 지지하는 공무원들의 명단, 소위 블랙리스트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지역신문 기사 보고서야,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살생부 명단을 직접 작성하셨습니까?”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살생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셨습니까?”

“전혀 관여한 적 없습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셨습니까? 여기서 관여란... 시장님의 지시, 묵인, 방조, 보고 등을 말합니다.”

“지시도, 묵인도, 방조도, 보고받은 적도 전혀 없습니다.”


“지시도, 묵인도, 방조도 하신 적 전혀 없으시다... 다시 묻겠습니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거나 묵인하거나 방조하거나, 작성된 명단을 보고 받으신 적 있습니까?”

“없다고 했잖아요.”


“만약,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거나 묵인하거나 방조하거...”

“이봐요! 의원님! 지금 앵무새 훈련시켜요? 없다니까!”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요? 아, 책임질게요. 지면 되잖아!”


“시장직 거실 수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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