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오징어를 굽지 않고 입에 넣을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의 치아 상태에 썩 자신이 없다면, 좀 번거롭더라도 가스레인지를 켜야 할 것이다. 허나 치과의사 만날 일 없게 자신 있는 잇몸이라면 그냥 딱딱한 채로 천천히 씹는 것도 나름 별미라고 생각한다. 어금니에 힘을 싣는 수고의 대가랄까. 더 오래 이를 움직이는 노동의 선물이랄까. 불꽃 세례 없이 그냥 먹는 맛, 찬찬히 배어나는 그 짭조름한 육즙의 감칠맛이 더하다고 느끼는 건... 글쎄 나뿐일지도 모르지만.
세상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특히 법서(法書)들이, 굽지 않아 딱딱한 마른오징어를 닮은 것 같다. (요즘 나오는 일부 법학 교과서들은 디자인의 세련도가 한층 나아진 것도 같지만) 아주 긴 세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법서들은 겉표지 생겨먹은 것부터가 퉁명스럽고 메마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꺼운 표지를 열었을 때 처음 만나는 법대 교수의 서문(序文)은 엄숙·근엄·진지 그 자체니... 이후 전개되는 목차와 본문을 접하기도 전에 이미 머리말 단계에서부터 사람 기를 죽이고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의 법서들이다.
본문을 읽어 나가는 것 그 자체가 고역이다. 천재가 아니고서는 1~2번 읽는 것으로는 의미 파악도 힘들다. 아직 채 다 걷어내지 못한 법 문장의 일본식 표현이나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는 번역 투 문체 때문만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전문용어들의 난해함은 첫 번째 난관. 거기에 더해 법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촘촘한 체계성과 치밀한 논리 구성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러 차례의 반복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법 중에서 최고난도로 꼽히는) 민사소송법 교과서는 당나라 말로 적혀 있다고...
그러나 처음 깨물 때는 잇몸을 아프게만 하는 딱딱한 오징어 다리도 계속 씹다 보면 그 맛이 생겨나 더하듯이, 법서도 반복하는 이에게만 그 숨은 매력을 허락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여섯 번 이상 되풀이하다 보면, 그 정교하고 탄탄한 논리의 그물망이 마치 나무 기둥 사이에 매단 해먹(그물 침대)처럼 재미와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거기까지 올라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 속 풀꽃 내음 향기로운 산책로가 펼쳐진 공원에 이른다고나 할까.
법조문에 대한 해석을 두고 벌이는 학설(學說)들의 다툼을 보노라면, 칼 대신 펜을 들고 글자로 싸우는 세기의 명승부를 관전하는 짜릿한 맛도 느낄 때가 있다. 학설들이 서로 치고받는 논쟁은 치열한 논리로 엮은 생각들의 대결이고, 그 논증의 전개 과정은 절로 탄성을 내뱉게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법서는 흡사 바둑을 닮았다. 흰 종이 위 검은 활자들의 전쟁은 백돌과 흑돌이 뒤엉켜 싸우는 모양새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리고 법을 소재로 한 텍스트들 중에서도 백미(白眉)는 역시, 판례(判例)다.
신문 사설을 꾸준히 읽는 것이 글 쓰는 능력을 기르는 한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기에 더해, 판례, 특히 헌법재판소 판례들을 정독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법들에 관한 판례에 비해서 헌법재판소 판례는 기본적인 법학 지식이 없더라도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리고 우리네 삶 속, 가치관들이 충돌하는 지점들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가 주된 쟁점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헌재 판례는 그 자체가 훌륭한 ‘글’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쾌한 문장이 빚어내는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의 흐름은, 생각하고 쓰는 뇌의 근육을 멋지게 단련시키는 교본으로 손색이 없다.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훈련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늦은 나이에 감히 글을 써서 발행하기 시작할 수 있었던 소박한 밑천은, 15년 동안의 백수 취준생 경험인 것 같다. 마른오징어 같은 법서들 속 정제(精製)된 문장들의 반복. 어쨌거나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지력과 필력을 겸비했다고 평가되는 재판관들의 문장들, 그 판례들을 긴 시간 동안 고민하며 되짚어 읽었던 경험들이 그래도 아주 헛되지는 않은 듯싶다.
결국, 바라던 분야에 들어서기 위한 자격을 취득하는 데는 끝내 실패했지만... 결승점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털썩 넘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넘어지는 자는 넘어지는 대신 땅에 떨어진 뭔가를 줍게 된다고... 습기 찬 고시원 골방에서 씹고 또 씹었던 마른오징어들에서 배어 나온 육즙 몇 방울은, 작가가 될 수 있게 만든 힘이 되었다. 생각을 엮어 다듬고 펼쳐내는 필요 최소한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습득하였기에, 그 15년의 시간은 실패만은 아닌 실패로 받아들인다. 실패치고는 참 고마운 실패.
그래도, 마른오징어의 육즙은 이렇게 남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