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

by rainon 김승진

이번 명절 연휴는 온전히 혼자 지내고 있다.

수술 후 8주 차,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보니... 명절 상차림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더 정확하게는, 명절 상차림 앞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다. (맨밥에 물 말아서 두부 조각 깨작거리는 모습은 모두의 식욕을 뚝 떨어뜨릴 테니까. 괜히 주변을 미안한 기분에 들게 하긴 싫다.)


물 부어 데운 햇반에 참치 통조림, 죽, 연두부만 꼭꼭 씹어서 먹고 있는데... 하지만,


조심 또 조심한다고 해도 그놈의 ‘덤핑’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심한다고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위가 거의 없으니 음식물이 소장으로 급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걸 막을 길이 없다.


간밤 내내 복통, 구토, 설사, 현기증, 식은땀. 이번엔 좀 세게 왔다. 기운도 없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어쩔 수 없이 짜증과 원망이 솟구친다. 근데 누굴 원망할 건가? 암에 걸린 것도, 덤핑이 오는 것도 죄다 내 탓인데. 이럴 때, 이 한마디를 떠올린다.


“아이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항암(치료)하고 싶어요.”


위암 환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 위암 말기 환자분의 한마디다.


그토록 끔찍하다는 항암 치료의 고통도 그저 달게 받을 테니, 조금만 더 살 수만 있게 해 달라는 염원.


간사하고 나약한 내 마음이 느슨해지고 흐트러질 때마다, 저 한마디를 떠올리고 반성한다.


쓸 수 있는 모든 약을 다 쓰고, 최후의 방법으로 임상 1상 항암제를 맞고 있다는 어느 말기 환자분. 그분이 좀 전에 단체 대화방에서 한 말.


“7월에 약 끝나면 그냥 ‘소천’한다 생각하고서, 지금을 3배 더 재밌게 보내고 있다. 혹시 더 살면 보너스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끝을 알지 못한다. 그게 1년 후일지, 1달 후일지, 내일일지, 몇 시간 아니 몇 분 몇 초 후일지. 아무도 절대로 알지 못한다. 교통사고 같은 불의의 사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 대부분은 그날 아침에 먹은 밥이 인생 마지막 식사라는 걸 상상도 못 했을 것.


‘내일’을 함부로 장담하지 못하는 것. 그게 삶이니까.


새삼, 삶 자체도 그렇지만, 삶의 모든 순간은 축복이다... 라는, 너무도 당연해서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는 그 명제를 다시 다짐으로, 기도로, 의식에 새긴다.


마음을 새롭게 고쳐 먹으니, 몸도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이들 모두. 새해 건강! 부디 건강만 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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