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이야기

by rainon 김승진

작년 12월은 지옥이었습니다.

위암 확진. 그리고 위절제 수술.

이대로 끝나는가. 여기까지가 다인가.


새하얀 수술대 위에 올라, 얼굴을 덮어 오던 마취가스 마스크를 맞이하던 순간, 혼잣말.


"이만하면 됐다. 세상 구경 잘하고 간다. 죄 많은 삶에 내려진 과분한 축복, 참 감사하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다. 끝없이 감사하며, 끝까지 보답하며, 끝까지 숨 쉬자. 나는 볼품없는 "몽당연필"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을 그 "끝"까지 걷고 또 쓰자.


수술 3주 후에 예정된 새해 첫 출강을 위해, 흰 죽 한 그릇 꼭꼭 씹어 삼키고 수액 폴대를 붙잡고 이를 악물고, 병동 복도와 병실 안을 하루 2만 보씩 걸었습니다. 그리고 1월과 2월 세 차례 행안부 자치인재원 강의를 무사히 해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강의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난생처음으로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끝이라고 체념했던 순간을 견디고 나니.


"몽당연필" 앞에 종이가 조금 펼쳐집니다.


아직 암은 현재진행형이고, 펼쳐진 종이가 언제 어디서 끝날지는 모르지만. 볼품없고 조그만 몽당연필은,


멈추지 않고, 쓰며 걷겠습니다.


제 나름 그 지옥 같던 시간에, 응원과 격려를 주신 모든 분 덕분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전복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