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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OX를 가르는 선(線)들이 만든 그물

새벽별 아래서(書)-06

by rainon 김승진

2000년 1월 1일 자정. 뉴밀레니엄이라는 단어가 온 세상을 뒤덮었던 그때의 전 지구적 호들갑이 지금도 생생하다.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가던 그 순간에 쿨쿨 자고 있었을 사람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마치 천지가 뒤바뀌고 새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밖에 안 나는) 들뜸 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요란하던 그때 TV 속 MC의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뉴밀레니엄을 맞은 순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시계 초침만 시큰둥하게 가던 제 걸음을 계속할 뿐.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이고, 오늘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내일인데... 인간은 원래 가만히 있던 자연의 아날로그를 선(線)으로 난도질하여 디지털이라는 개념을 창조해 냈다. 한 때,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퇴출시키느냐 마느냐 논쟁이 천문학계를 지배하던 시절, 상당수의 사람들은 실소를 참지 못했다. 명왕성은 그냥 거기 가만히 그대로 있을 뿐인데, 정작 자신이 태양계에 속하든 말든 전혀 관심도 없을 텐데... 디지털을 숭배하는 인간들의 호들갑이 명왕성은 얼마나 웃겼을까나...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디지털 관념의 시작은 돌도끼와 뼈바늘이 유일한 도구였던 아날로그 지구를 이처럼 스마트하게 바꾼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법의 영역에서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을 경계선(線)의 관념은 그 의미가 깊고도 무거운 것이다. 어찌 본다면 법(法)이라는 것의 탄생도 사물과 현상을 분석적으로 쪼개어 바라보는 디지털적 사고방식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그 어떤 복잡한 분쟁에 관한 판결(법의 적용)도 결국은 각각의 쟁점들에 대해 O냐 X냐 판정들을 모아 조립한 최종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사소송에 있어서 법원은 대립하는 양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 중 한쪽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내가 이기느냐(승소), 네가 이기느냐(패소). 둘 중 하나를 정하는 싸움이 민사소송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전부 승소·패소만큼이나 흔한 일부 승소도 결국은 양적·질적으로 분쟁 대상을 분할해서 내린 O/X 판단이다.)


그 O/X를 정하는 것은 사실관계 인정과 법령의 해석에 바탕을 둔 판사의 판단이다. 그리고 판사는 오직 법에 따라 심판한다. 그래서 O/X를 결정짓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법이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조리, 즉 상식에 의해 판단하도록 하는 민법 제1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상식이 법을 뒤집을 수 있게 한 민법 제2조의 경우는 굉장히 드문 사례이므로 논외로 한다.)


그래서, 한마디로 법(法)은 선(線)이다. O/X 여부를 정하는 경계가 바로 법인 것이다. 술을 마시고 핸들을 잡은 운전자의 면허가 취소되느냐(O), 정지에 그치느냐(X) 여부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8%를 넘느냐(O), 안 넘느냐(X)에 좌지우지되는 것이고, 그 경계선인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을 0.08%로 선(線) 그은 것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 28이다. 법(法)은 선(線)이다.


이 경계선(線)의 힘은 참으로 강하고,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앞의 사례만 보더라도,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던 죄의 대가가 운전면허 취소(O)냐, 정지(X)냐는 벌을 받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차이다. 음주운전자가 자신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가늠해 가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시고도 개인의 체질 등 상황에 따라 갑돌이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79%에서 그치고, 을순이는 0.081% 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경계선의 힘을 더욱 절감하게 한다. 시쳇말로 한 끗 차이, 간발의 차이를 정해버리는 것이 법이 정한 선(線)인 것이다.


한 끗 차이로 선을 넘느냐 마느냐로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은, 특히 형법이나 행정법 등 처벌과 규제를 다루는 공법(公法)의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것이지만, 민법과 같은 사법(私法)에서도 그 힘과 중요성은 만만치 않다. 민법에는 그러한 선(線)을 긋는 조문들이 무수하게 많은데, 민법전 최초로 등장하는 그에 관한 규정이 바로 민법 제4조(성년)다.


제4조(성년)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


성년(成年)이라 할 때, 흔히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술집에 드나들 자유가 허락되는 나이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테지만 이는 청소년보호법의 영역이다. 민법에 있어서 성년의 개념은 술·담배보다는 더 근본적(!)이고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독자적인 ‘거래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성년(成年)이 된다 함은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민법이 개념 짓는 ‘행위능력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서 살펴보자.


민법(나아가 그 특별법으로서의 상법 등 재산법 전반)이 허용하고 있는 ‘권리’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보건대, 재산의 ‘보유’와 ‘거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아파트를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쉽다.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민법 재산법 중 ‘물권법’은 재산의 ‘보유’를 규율하고, ‘채권법’은 재산의 ‘거래’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 (이해의 편의상 ‘보유’라는 일반적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소유권과 점유권, 용익물권, 담보물권 등 모든 물권의 귀속을 통칭하는 것으로 하자.)


재산의 ‘보유’와 ‘거래’. 이 둘 중에서 ‘보유’는 태어난 지 1시간밖에 안 된 갓난아기에게도 무제한 허용된다. 신생아라 하더라도 상속이나 증여에 의해 수백 억 짜리 빌딩을 ‘보유’할 수는 있다. 간혹 뉴스에 등장하는 금수저 주식부자나 건물주 어린이들이 이런 경우다. 심지어 엄마 뱃속의 태아도 일정한 요건 하에서 재산을 가질 수 있게끔 민법은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거래’는 그렇지 않다. 수백 억 짜리 빌딩은커녕 1천 원짜리 공책 한 권도 미성년자는 혼자서는(!) 사고팔 수가 없는 것이 민법이 정한 ‘대원칙이다. 학교 앞 문구점이나 떡볶이집에 바글거리는 초·중·고 학생들은 그럼 대체 뭐냐? 는 갸우뚱 의문에 대한 답은, “그것은 바로 민법이 정한 ‘예외’입니다.”


제5조(미성년자의 능력)

①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제6조(처분을 허락한 재산)

법정대리인이 범위를 정하여 처분을 허락한 재산은 미성년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


민법 제4조를 바로 뒤쫓아 가는 이 두 조문이 바로 미성년자의 거래행위를 ‘예외적으로’ 허락하는 규정이다. 원칙적으로 미성년자는 절대로(!) 그 어떤 거래행위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서 법정대리인(부모)의 동의 없는 거래행위는 무조건 취소할 수 있는 것이지만,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 즉, 전혀 손해 볼 일 없는 거래행위나 법정대리인(부모)이 준 용돈으로 학용품이나 간식을 구매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코흘리개 아이가 1천 원을 들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과자 한 봉지를 집는 것은 흔하다 못해 당연한 풍경이지만, 사실 이 아이의 과자 한 봉지 구입은 법적으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으로 민법이 허락하는 경우다.


민법의 핵심 개념인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은 결국, 각각 재산의 ‘보유’와 ‘거래’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재산의 ‘보유’를 가능하게 하는 ‘권리능력’은 태어나는 순간부터(심지어 일정한 경우에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갖는 것이지만, 재산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행위능력’이라는 것은 만 19세가 되는 날에 비로소 허락되는 것이다.


그 경계선(線)을 선언한 것이 바로 민법 제4조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그 경계선(線)을 어떻게 그을 것인지에 대해 민법은 제155조부터 제161조까지 시간의 흐름과 계산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단 한 끗 차이로 희비(喜悲), 아니 생사(生死)가 엇갈리는 것은 포커나 섯다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 100억 원 빌딩을 매매하는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치자. 판매자 또는 구매자가 그 계약서에 서명한 시점이 만 19세가 되는 날의 자정 직전이냐 직후냐, 단 몇 초 차이에 의해 그 계약의 효력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어떠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빚어내는 분쟁'의 해결이란, 결과적으로 O냐 X냐의 판단을 요구한다. 앞서 상세히 살펴본 ‘독자적인 거래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인 ‘행위능력’의 분기점인 만 19세 성년에 관한 민법 제4조를 시작으로, 민법은 O냐 X냐를 판별하기 위한 경계선(線)에 관한 무수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그 경계선(線)들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얽혀 있는 그물. 그것이 바로 법(法), 민법(民法)이다.


여담. 세상에는 악당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법이 정하는 이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법의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악한 미꾸라지들. 머리 좋은 나쁜 놈들, 영리한 괴물들... 정말 도처에 널려 있다. 이놈들에게 눈뜨고 코 베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법(法)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정도는 있어야 하나보다. (너무 나간 소리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가진 게 없는 이들도 법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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