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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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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Jun 09. 2021

굿바이. 모니터.

출근한 지 30분 만에, 3년 써 온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가 수명을 다했다. 급하게 작성하던 보고서는 먹지가 되어 버렸다. 당황과 다급 속에 전산팀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니터 브랜드가 뭐죠?" "...... 잠시만요." 천일이 넘게 코끝을 마주했던, 늘 눈 바로 앞에 있어왔던 모니터 브랜드 로고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작별하는 날에, 3년 만에 처음으로 브랜드 로고를 유심히 본 것이다.


모니터 교체를 마친 전산팀 직원은, 지난 3년간 날 가장 오래 쳐다보았을 내 원고지 겸 도화지를 들고 떠났다. 잠시 멍하니 앉은 채로, 떠난 원고지 겸 도화지의 이름(?)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직원이 챙겨간... 하루아침에 "옛" 것이 된 모니터가 생각났다. 황급히, 이번에는 직접 전산장비실로 걸음을 재촉한 것은, 옛 모니터에 붙어서 함께 들려간 보안 필름 때문이었다. 그냥 무심히 버리기에는 적잖은 가격이다.


문 열고 들어선 전산장비실 구석에는, 5분 전까지만 해도 날 바라보고 있던, 15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옛 모니터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선뜻 손을 가져가지 못해 잠시 주춤... 거리다 보안 필름을 뜯어냈다. 또 한 번 주춤했던 것은, 마지막 눈길을 건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보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돌아와, "새" 모니터에 떼어내 온 보안 필름을 붙였다. 이상하게도, 알 수 없게도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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