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친정 없는 한국으로 한 달 살러 가기

by 세라

나는 한국에 아이들과 함께 한 달 살러 갔다.

나는 한국에 부모가 있지만 그러나 날 따뜻하게 맞아 줄 부모는 한국에 없다. 새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 새엄마의 계속된 따돌림과 자기 아들에 대한 지독한 편애로 인해 나를 항상 집안의 왕따로 만들고 눈에 보기 싫은 애물단지 취급받으며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나날이 쌓여 갔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가 어떤 여건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모른척하면서 자기만 챙기기 급급한

이기적인 아버지였다. 난 그런 부모 같지 않는 부모랑 결국 인연을 끊었다. 계속 연락하면서 안 좋은 감정과 원한을 마음에 품는 것보다 마음에서 그들의 존재를 잊고 싶었다.

우리가 한인 교회에 다녔던 거의 모든 한인 교회 아이들은 한국에 계신 조부모님들이 소포로 보내주신 메이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그리고 최신형 유행 장난감을 가지고 교회에 왔다.

난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뉴질랜드의 저렴한 보세옷과 신발을 입히고 신겨서 키웠다. 한국에서 보내온 좋은 한국물건들은 그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것들이었다.

한국에는 부모가 있지만 나에게는 절대로 가까이 지낼 수 없는 그런 존재의 부모였다.

더 이상 나의 부모들로 인해서 다시 내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깊은 상처는 결국은 나에게 트라우마나 나의 단점이 되어서 돌아왔다. 오랫동안 상처받은 내 마음은 그들을 보고 싶지 않은 내 자존심 싸움으로 결국은 이어졌고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다시 생김으로써 내 마음의 평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난 뉴질랜드에서 서서히 그들을 잊고 지냈고 그래서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고 살 수 있었다.

마침내, 십 년이 넘는 세월에 지나서야 난 내 아이들과 함께 드디어 한국에 갈 수 있었다.

작은 녀석은 처음 타보는 국제선이라고 많이 좋아했다. 처음 타는 장거리 비행기인데도 신기하게도 잘 먹고 잘 자고 비행기 안에서 영화도 너무 신나게 보면서 비행기 안에 있는 자체를 마냥 즐겼다.

아버지랑 새엄마를 제외한 친척들과 사촌들을 만났다. 그러나 한국에서 우리를 만난 친척들과 사촌들은 우리가 머물 한 달이 너무 길다고 다 들 한소리씩 했다. 한국 사람들은 짧게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을 선호하니까 그런 것 같다.

뉴질랜드는 이민자 국가다. 대부분이 해외에서 온 이민자나 이민자 자손들이다.

원주민 마오리 사람들만 빼고…

사람들이 본국으로 아이들과 여행 가면 대체로 대략 한 달 정도 머문다. 무엇보다 비행기값이 비싸서 그 정도 머물러야 본전 뽑는다. 뉴질랜드는 중간중간 짧은 방학들이 있다. 짧은 방학을 이용해서

학교에다 본국방문을 구실로 길게 휴가를 한 달 정도 잡아서 여행을 간다.

우리도 본국방문 구실로 아이들 학교에다 양해를 구해서 한국에 한 달 살러 갔다.

우리가 한국에 갔을 때 내 한국에 조카들은 여전히 학기 중이고 학교와 학원들을 열심히 병행했다.

한국의 교육 여건을 보니 너무 과열된 경쟁으로 나도 한국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잘 키울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는에서는 각개인의 행복을 중요시 생각함으로 각자의 타고난 재능을 존중하고 본인 개인 의견과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대학을 가든 안 가든 공부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자유롭고 여유가 있다.

작은 녀석 노아는 지하철을 너무 신기해했고 타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뉴질랜드에 없는 지하철이니 얼마나 신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가는 곳곳마다 편의점과 커피숍에 식당등 많은 가게들이 발길 닿는 곳마다 있어서 서울을 구경하는 동안, 우린 배가 고픈 적이 없었다 반대로 우린 항상 배가 불러 있었다.

나와 내 아이들은 한국 있는 동안 숯불갈비를 너무 사랑했다.

맨날 숯불갈비만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가 우리에게 물었다. “뉴질랜드에서 주로 뭘 먹고 사냐고? ” 그래서

우린 “스테이크에 샐러드요”라고 대답했다.

우리한테 “뉴질랜드에는 숯불갈비가 없냐 “고 물으셔서 그 대답으로 스테이크에 샐러드가 주식이라 말씀드렸다. “우리도 뉴질랜드에서도 고기를 매일 먹고 산다고요. “ 단지 뉴질랜드에서는 한국의 숯불갈비가 한국보다는 훨씬 비싸고 한국처럼 흔하게 찾아 먹을 수 없을 뿐이다.


뉴질랜드는 대중교통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대부분 승용차로 움직인다. 근데 한국에선 여한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탔다. 무제한 한 달짜리 대중교통 카드를 사서 밤에 눈도 맞으면서도 여한 없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사는 오클랜드는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도 안 온다 그러니 한국에서 진짜 눈을 맞으면서 밤에는 남산 타워랑 광화문도 돌아다녔다.

그러게 늦게 돌아다니고 오는 밤에는 치킨집에 가서 치킨을 야식으로 사서 먹기도 했다.

한국에서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잘 느낄 수 없는 밤 문화와 야식을 즐겼다.

해 지고 캄캄해지면 사람 구경하기 힘든 뉴질랜드에서 적막하게 살다가 사람들 북적북적 거리를 걸으니 내 아이들한테는 모든 것이 다 다르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온돌방을 접해 봤고 침대 없이 요를 깔고 온돌방에서 잤다.

처음에는 우리가 과연 침대 없이 온돌방에서 잘 수 있을까 내심 걱정 했는데, 오히려 온돌방이 한 겨울엔 따뜻하게 온몸을 노곤해지게 만들면서 잠을 잘 오게 했다.

온돌방을 계기로 에밀리랑 노아는 찜질방을 너무 좋아하고 즐겼다.

각기 다른 테마방이랑 각종 오락 시설과 그리고 음식을 찜질방에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고 좋아라 했다.


난 서울을 여행하는 내내, 저녁에 잘 때 심하게 코를 골았다.

아이들과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것이 나에게는 몸에 무리 왔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달 동안 겨울에 서울을 여행하는 동안 나의 갱년기는 잊고 지냈다.

갱년기 때문에 선풍기 없이 저녁에 잠도 못 자는 나인데, 온돌방에 몸을 지지니, 잠이 스르륵 왔다.

내 갱년기 증상 때문에 이유 없이 새벽에 잠에서 깨곤 했던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았다는 것은 잠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버렸다는 것이란 말이다.

진짜 신기했다~ 내가 그러게 심하게 코를 골 거라 진짜 감히 상상도 못 했다.

그러게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나의 배는 항상 불러 있었고, 나의 갱년기는 잊고 지냈다.

에밀리와 노아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경험하는 일들이 그저 새롭고 신기했을 뿐이다.

큰딸 에밀리는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단조롭고 심심한 뉴질랜드 살다가 복잡하고 북 쩍 거리는 서울에 가니 사춘기인 고등학생인 에밀리는 뉴질랜드보다는 활기찬 한국을 색다르고 모던하게 느낀 것 같다. 에밀리는 올리브영을 좋아했고, 변우석을 또한 좋아했다.

에밀리는 본인 피에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우린 다행히도 내 친정 없이 지낸 한 달 동안 큰 사고나 크게 아픈 적 없이 무사히 한국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많은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음 한국행을 기약하며 한국 계절의 정반대인 따뜻한 햇살에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여름의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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