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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꿀꽈배기 Oct 29. 2024

7장. 의사들의 고충은 무엇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의사를 싫어하기도 합니다. 의사들은 모이면 매일 자조 섞인 푸념을 합니다. 의사가 아닌 친구들과 모여서 어려움을 얘기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무시하거나 술값 내라면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의사들은 점점 더 의사들과만 대화하고 고충을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사회에서는 가진 게 많은데도 불평불만만 많은 조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은 왜 생길까요?

먼저 의사들의 불만과 주장이 완전히 근거 없는 투정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은 있으니까요.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의사 입장에서 서술해 보겠습니다. 재차 말하지만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을 지원하는 수험생 입장에서 15년 뒤에도 이 논리가 가능할지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 작성했습니다.


1) 의사는 돈 잘 벌잖아. 

의사는 잘 알려진 고소득 전문직입니다.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고, 이것을 부정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얼마나 더 높아야 만족할 거냐 이 문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사가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의대를 입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은 본인의 선택을 차치하더라도 의과대학 입학과 동시에 들어가는 높은 수준의 등록금과 생활비(의과대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근무 시간을 감안하면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인턴 레지던트 생활, 긴 군복무를 거쳐 약 15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펠로우 기간은 임금 근로자 중위소득 정도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습니다. 그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의사로서 기대하는 수입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막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면, 15년 뒤에도 지금 같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의사가 되어서 기대하는 바가 단순히 높은 수입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2)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

의사가 되어 현장에 나온 이후에도 의사는 상당히 높은 긴장도를 가지는 직업입니다. 단 한 개의 진단만 놓치더라도 환자한테는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고, 고스란히 의사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됩니다.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긴장상태를 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수술하는 의사는 100건의 수술이 잘되었더라도 1건의 수술이 잘 못 되었다면 힘든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진단을 하는 내과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명의 환자를 적절히 진단해도, 한건의 암을 놓친다면 환자도 의사도 괴로운 일입니다. 높은 수준의 위험, 긴장도, 의료 소송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상당히 많은 의사들이 우울감, 번아웃과 같은 피로, 수면장애,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3) 의사가 무슨 3D냐

힘든 일을 할수록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려운 일을 하시는 다양한 분들을 존경합니다. 일견 의사의 삶은 우아하고 도도해 보이는데, 어렵고 위험하고, 심지어 더럽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의사의 삶은 전형적인 3D 업무입니다. 일단 어렵습니다. 이건 앞에서도 충분히 얘기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되기도 어렵고 하고 있기도 어렵습니다. 두 번 째는 위험함입니다. 행려자인 환자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혈압이 떨어지고 출혈양이 많아서 기다릴 수 없이 응급수술을 들어갑니다. 피가 마구 쏟아지고 중간중간 심장마비로 심폐소생술도 해가며 10시간 수술을 마쳤습니다. 두 가지 위험상황이 생깁니다. 나중에 혈액검사를 확인해 보니 환자는 에이즈 환자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하면서 피가 사방에 튀었고 정신없이 도구를 바꿔서 수술하면서 주삿바늘도 찔렸습니다. 채혈을 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에이즈에 걸리는 것인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에이즈에 노출되면 감염확률을 줄이기 위해 4주간 에이즈약물을 복용해야 합니다. 상당히 독한 약물로 복용에도 상당한 부작용이 동반됩니다. 결핵환자에 노출되어서 항결핵제 약물을 복용하거나 B형 간염 보균자가 되는 등 감염성 질환에 노출 우려는 항시 있고, 코로나 19, MERS 등 보건의료의 위기 상황에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일선 의료기관에서 근무했습니다. 사회적인 보상은 둘째 치더라도 의료진의 자녀가 코로나 상황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는 등 어려움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위험함은 의료 소송입니다. 아까의 행려자를 수술을 해서 살아났습니다. 보호자를 찾을 방법이 없고, 수술을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후 시간이 지나서 발견된 상황이라 허혈(피가 부족한 상태)이 지속되어 머리에 허혈성 손상이라는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재활치료가 필요합니다. 이제 보호자가 나타납니다. 10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보호자가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겁니다. 의료진의 과실로 환자의 후유증이 남았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취지입니다. 물론 병원비는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법원은 보호자의 손을 듭니다. 의료진이 좀 더 잘했으면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거라는 취지의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의료법 위반으로 억대의 배상금과 면허정지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역의 유일한 응급 수술을 담당하던 외과의사는 사직하고 그간의 전문성을 모두 내려놓고 빚을 갚기 위해 피부미용을 선택하게 됩니다. 씁쓸하게도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더러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의외이신가요? 저는 소화기내과 의사입니다. 주 업무는 위대장을 전문으로 합니다. 대장내시경을 받으신 분은 알겠지만 대장에는 변이 있기 때문에 장정결이라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합니다. 상당히 많은 환자가 장을 완전히 비우지 않고 병원에 옵니다. 변이 가득합니다. 대장내시경 전후 수면 중에 변을 지리거나 방귀를 뀌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이상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끝내고 나면 의사와 내시경을 도와주는 간호사들은 오물 범벅과 냄새를 달고 있습니다. 예약된 검사라면 그나마 양반입니다. 만성 변비로 제때 처치를 받지 못한 환자는 관장을 하거나, 심하면 손가락을 파내줘야 합니다. 변이 막힌 것만으로도 장이 터져서 사망할 수 있으니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그 과정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4)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환자가 됩니다. 의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사람은 보통 화가 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입니다. 처음 진단 단계에서는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과 분노 단계에 해당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고, 큰 병을 진단받은 분에게 측은지심도 듭니다. 하지만 적절한 의료 행위를 하고도 본인이 화를 내거나 가족이 찾아와서 잘못된 점은 없는지 녹음기를 들고 찾아오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맛난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예 병원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오는 사람도 있고, 돈을 주지 않으면 대기실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경찰을 부른 적도 있습니다. 마약을 처방받기 위해 타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오거나 내시경 검사를 빙자해서 마약 투약을 맞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혈액검사를 하겠다고 하고 문제가 없는데도 아프다며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같은 방법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 한 행위에 환자들이 회복되고, 대부분 선의를 알아주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 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기운 빠지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의사도 환자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합니다. 환자도 가끔은 의사의 마음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까요?

 다시 정리하자면, 의사들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른 직역에 계신 분들도 다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기득권으로 분류되고, 어려움을 토로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뒤에 장에 다룰 지금의 의료 위기와 관련해서도 소통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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