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 생활은 궁금하지 않은 분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의사들은 남자친구 또는 남편이 군의관을 가지 않는다면 관심이 없는 영역이고, 남자 의사들도 먼 미래에 막연히 생길 수 있는 일, 그리고 나는 왠지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근거 없는 현실부정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이 생활이 굉장히 이질적인 경험이었고, 군대를 가야 하는 젊은 남자 의사들은 이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가볍게 경험을 나누는 측면으로 공유해 보겠습니다.
짧게 언급한 대로 의사의 군복무는 면제를 제외하면 사병복무, 군의관, 공보의 세 가지의 길로 나뉩니다. 아직도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통상 전문의 시험을 보고 나면 입영 통지서가 같이 나오게 되고, 상대적으로 삶의 질이 높은 공보의가 되지 못하면 군의관으로 육군, 해군, 공군으로 배정되게 됩니다. 육군의 비율이 가장 높고, 해군, 공군은 상대적으로 적고 공군 군의관이 가장 수도권에 근접한 배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 선호됩니다만, 이 과정은 모두 운으로 이뤄집니다.
이것도 제가 경험한 육군 군의관 위주로 작성하겠습니다. 육해공군 중 어디로 배정받더라도 군의관은 군장교로 임관하게 되기 때문에 군사훈련을 먼저 받게 됩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괴산의 학군교라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핸드폰도 쓸 수 없고, 외출도 없습니다. 통상 30대 초반의 나이기 때문에 일찍 결혼했다면 배우자와 아이가 있습니다.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손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아침마다 구보하고 밤마다 불침번을 서는 생활을 약 2개월 정도 합니다. 30대 전문의 선생님들이 핸드폰을 쓰고 싶어서 몰래 반입을 하기도 하고, 과자를 더 먹고 싶어서 싸우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니 젊었다 싶고 어려움을 함께 해서 그런지 나이 들고 얻기 힘든 좋은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후반기에는 대전의 의무학교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남은 약 1개월 정도의 훈련기간을 보냅니다. 훈련기간 마무리에는 가장 중요한 어디에서 군생활을 하게 될지 뽑기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어떤 군생활을 하게 될지는 여기에서 대부분 결정됩니다.
군대에 가서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군부대가 참 많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은 도시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접경지역인 휴전선에 밀집하여 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전방에 상당히 많은 부대가 있고, 군인과 군부대가 있는 만큼 군의관도 많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1년 차 군의관은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지역으로 배치가 됩니다. 미혼이라면 생활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지만, 가정이 있는 경우는 더 어렵습니다. 전방의 군부대에 지원하는 군관사는 매우 낙후되었거나 외지에 위치해서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가족들이 생활하기에는 위험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반딧불이를 보거나 고라니를 쉽게 마주치는 등 이후에는 경험하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군부대 내에서는 훈련을 할 때 부상자를 처치하기 위해 군용 앰뷸런스를 타고 따라가는 의무지원, 부대 내에 감기 환자등의 환자가 있을 때 일차적인 처치를 하는 진료행위, 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환자를 결정하는 외진업무, 예방접종이나 감염병 예방을 담당하는 양호 선생님의 역할을 많이 합니다. 군 병원은 거점별로 위치하고 있으면 전신에는 다친 장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고 평시에는 일반 병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과에서 진료를 보게 됩니다. 군인 신분이고 환자도 대부분 군인이지만 전문 영역을 살려서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군인 장병들은 비용을 내지 않기 때문에 비용의 제한 없이 치료를 할 수 있는 공공의료 영역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후에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잠깐 공유하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물론 최선의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예상하는 대로 도덕적 해이입니다. 고가의 검사를 수행해도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책임이 없으니 무조건 많은 검사를 요구하고 수행하게 됩니다. 필요 없는 검사와 치료가 많이 하는 것은 결국은 누군가에게 들어가야 할 재화와 노력이 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군의관이 그 검사는 필요 없다고 설명하려면 검사를 하는 것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환자인 병사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군대 생활 중에도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인사고과에 영향을 받습니다. 원하는 검사를 빨리 해주고 쉬는 게 더 이득인 상황이 됩니다. 군 병원에 진료를 보거나 입원하게 되면 힘든 업무와 훈련도 빠질 수 있다 보니 매일매일 가짜 환자를 대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진짜 아픈 환자를 걸러내기가 어려워집니다.
군의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병사들은 꽤 안쓰러운 존재입니다. 젊은 나이에 희망해서 군대에 오지 않았을 텐데 여기저기 치이고 힘든 일을 합니다. 병원에 아파서 오면 측은지심이 듭니다. 그런데 진짜로 아픈 환자를 걸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자와 의사도 원해서 이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군 병원과 군의관의 신뢰 부재는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군의관의 어려움은 징집을 받은 병사들이나 월급을 받지만 훈련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을 담당하는 부사관, 장교들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분명히 그들보다는 편하게 군생활하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경력을 쌓고 한참 재능을 펼치고 싶은 시기에 산골에서 빨간약 바르는 군의관의 박탈감도 상당합니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얻기 힘든 말이지만, 저는 군생활에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훈련이나 부대 생활이 즐거웠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반쯤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주말에는 쉬고 공휴일도 쉬면서 신혼생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전에도 후에도 이 정도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돌아봤던 시기는 없었고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기약 없는 야간 훈련에는 진짜로 별을 보면서 나는 누 군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했고, 그때 결정한 진로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시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지는 마시고, 일단 많은 시간을 한 번 누려보십시오. 의대를 지망하는 수험생이든, 젊은 의사든 그런 여유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