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대로 의사가 된 이후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환자를 보는 길도 있고 의학지식을 활용해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길도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기대여명이 계속 길어지고 평생직장이 사라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저도 임상의사, 내과의사로만 계속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상황이 계속 갈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가지 않은 모든 길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제가 겪었던 과정 순서로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의사 중에서 임상의사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중에서도 내과의 규모가 가장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사 중에서는 내과 의사는 숫자가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장에서 의대생이 어떤 과정과 선택을 거쳐 전문의가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의과대학은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받고 난 후,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가 되기로 하고 대학병원에 인턴 과정을 통해 입사했습니다. 수련과 경쟁을 통해 내과 전문의가 되기로 하고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선택한 시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내과 전문의수련 과정(전공의, 레지던트)은 제가 수련받을 때는 4년제였으나 현재는 3년제로 바뀌었습니다. 보통 1,2년 차는 주치의 3,4년 차(현재 3년 차)는 1,2년 차를 보조하고 공부하는 역할로 대략 나뉘어 있습니다. 내과 안에는 다양한 분과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내과는 모든 질병을 다루는 과에 가깝습니다. 임신-출산을 다루는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처럼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성인이 겪는 일차 질병의 치료와 예방, 암과 감염병처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을 다룹니다. 수술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질환과 약물치료로 나을 수 있는 질환에 대해 결정도 주로 내과의사가 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분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간담췌(간, 담도, 췌장질환)이나 위장관(위, 소장, 대장) 소화기질환을 다루는 소화기내과, 혈액을 걸러서 소변으로 내보내는 신장의 질환을 보고, 말기신부전(신장이 완전히 기능을 잃은 상태)에서 신대체요법(신장의 기능 대신하는 혈애구석, 복막투석 등)을 다루는 신장내과, 폐, 기관지 등 호흡에 관련된 호흡기내과,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는 펌프인 심장과 혈관의 질환을 다루는 순환기내과, 암의 진단과 항암치료등의 치료, 혈액 질환을 다루는 혈액종양 내과, 당뇨-갑상선등 호르몬 질환을 다루는 내분비내과, 류마티스 등 자가면역 질환을 다루는 류머티즘 내과, 코로나19 확산 때 활약했던 감염질환을 다루는 감염내과, 최근에는 노인의 질환을 다루는 노년내과, 중환자 치료를 전담해서 하는 중환자의학(중환자 의학은 꼭 내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일정 요건을 갖춰 취득할 수 있습니다.) 등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내과 전공의는 이처럼 다양한 분과를 대략 2달 간격으로 로테이션하면서 주로 입원환자 위주로 경험하게 됩니다. 야간에는 병실, 중환자실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야간 당직의사를 겸하고, 응급실에서 내과적 질환으로 입원하게 되는 환자에 대한 처치도 담당합니다. 최근에는 내과 전문의 취득 후 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야간 환자를 담당하는 입원전담의(hospitalist)로 진로를 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과 의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양한 과에 대해서 정보를 얻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과 전문의 중에서도 촌각을 다투는 응급질환을 주로 다루는 순환기내과도 있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살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중환자의학(호흡기내과에서 주로 많이 지원합니다.), 상대적으로 응급이 적고 외래환자의 비중이 높은 류마티스내과, 내분비내과 의사도 있습니다. 같은 내과 전문의이지만, 어떤 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급여나 직업적인 만족도를 우선으로 할지 삶의 질과 직업 안정성을 우선으로 할지에 대해서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응급도가 높은 순서대로 대략 나열해 보겠습니다. 응급 질환이 많고 촌각을 다툴수록 당직 근무가 많고, 휴일이나 퇴근의 개념이 모호해집니다. 가장 응급하고 잘 알려진 질환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5분 이내 진단해서 30분 이내 막힌 심장 혈관을 뚫어주지 않는다면 사망하거나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하면 전 병원에 비상이 걸립니다. 가장 응급한 질환입니다. 따라서 가장 응급도가 높은 과는 순환기내과(심장내과)이며, 내과 중에서는 응급 수술하는 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다음은 호흡기내과입니다. 폐렴과 같은 호흡부전 환자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수분-수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는 질환이므로 중환자가 많고, 회복도 더디기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 중에 상당수는 호흡기내과 환자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호흡기내과 의사가 중환자실 의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다음은 제가 속한 소화기내과입니다. 간경화 환자에서 식도정맥류 출혈과 같은 대량출혈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하면 응급 내시경등으로 지혈하거나, 혈관색전술을 통해서 출혈부위를 해결해야 합니다. 대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는 장허혈이나 폐색증, 장폐색, 장에 구멍이 뚫려서 복막염이 생기는 위장천공 등의 질환도 응급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감염내과, 신장내과입니다. 코로나 19를 포함한 감염성 질환, 뇌수막염, 폐렴등의 감염성 질환은 항암치료를 받는 면역저하들의 흔한 사망원인이고, 드물게 건강한 사람들의 목숨을 뺴았기도 합니다. 혈액검사나 진찰, 병력청취를 위해 적절한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상적인 항생제 치료에도 악화되는 경우에 내과의사들도 감염내과 의사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장 많은 지식과 노력이 필요한 분과이기도 합니다. 신장내과를 감염내과와 동시에 뽑은 이유는 만성신부전(신장 기능이 서서히 감소하는 상태)은 응급질환은 아니지만, 신장이 갑자기 기능을 잃는 급성 신부전의 경우 원인 치료나 신대체 요법을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거나, 급성으로 신장 기능을 영구히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진단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로 신장기능이 떨어진 신부전 환자는 면역저하 상태기 때문에 다양한 감염질환, 심혈관 질환 등이 쉽게 발생하는 고위험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장내과 의사는 신장 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노인의학, 류마티스내과, 내분비내과 등은 상대적으로 외래에서 처방받는 환자의 비중이 높지만 내분비내과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당뇨병성 케톤산증, 갑상선 중독증 등 응급질환도 대학병원에서는 드물지 않게 입원치료를 받습니다. 분과 선택에 따른 삶의 변화는 거의 새로운 과를 정하는 것만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