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입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의사가 되려면 바늘구멍 같은 입시전쟁을 통과해야 합니다.
더 의사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한 친구, 의사가 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와줄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 공정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글픈 일이지만 개인은 제도를 바꿀 수 없습니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는 여기서 다룰 내용이 아니므로 넘어가겠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목표가 있고 여러 명의 사람이 그것을 원한다면 공정한 방식으로 경쟁해서 쟁취해야 합니다.
자, 수험생 여러분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 먼저 생각해 보시고, 결정이 섰다면 트랙 위에서 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일단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의과대학은 전통적으로 기본 6년 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6년 세부적으로 예과 2년, 본과 4년 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거의 사라진 의전(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타대학 4년제 졸업을 마치고 의과대학 본과 4년을 마치는 제도였습니다.
예과는 물리학, 화학, 영어 같은 기초학문을 먼저 배우는 시간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힘든 입시를 거쳐서 대학 입학을 하고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학교생활, 같은 길을 가는 동기들과의 우애를 다지는 시간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본과 4년은 보통 2년 정도 의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전반기와 2년 정도 병원 실습을 하는 후반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과 1학년 때 해부학, 생리학과 같은 기초 학문부터 시작해서 본과 2학년때는 내과학, 외과학, 산부인과학 같은 임상과목을 주로 배우게 됩니다. 흔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산처럼 쌓인 책들과 해골에 형광펜으로 칠하는 공부 노트는 보통 이 시기에 사용됩니다.
거의 매주 시험을 치고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준비하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아, 그리고 제가 다니던 시기와 당시 의과대학 기준으로 한 과목만 낙제(F)를 받으면 1년을 통째로 다시 해야 하는 유급제도가 있었습니다.
몸이 안 좋거나 사정이 있는 것도 대부분 감안되지 않습니다. 보통 한 해에 10% 전후의 학생들이 매년 유급을 합니다. 6년간을 그렇게 하다 보면 입학 동기와 같이 졸업 사진을 찍을 확률은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본과 3학년때는 병원 실습을 시작하면서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임상 학문에 대해 배우고 경험하게 됩니다. 주로 의사들 사이에 메이저라고 하는 과들(내과, 외과 수술, 산부인과 분만,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을 먼저 실습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병원 생활하는 학생들은 학생선생님이라는 기이한 호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본과 4학년이 되면 선택에 따라서 본인이 흥미가 있는 마이너과( 피부과, 병리과, 비뇨기과 등 )를 선택해 실습을 돌고 본격적인 의사 면허시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국가로부터 면허증을 발급받고 한 명의 의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의사의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의사면허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의사로서 취직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흔하게는 미용병원에 취직하여 피부 미용 등의 시술을 배우고 급여를 받는 일반의사(GP, general physician - 보통 전문의가 아닌 의사로 활동하는 의사를 말함)로 일하거나 의학 전문기자, 변호사 면허를 추가 취득하여 의학전문 변호사, 아니면 의사로서 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양한 길이 열려있으므로 본인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갓 면허를 취득한 의사들은 대형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라는 과정을 지원하게 됩니다. 본인이 졸업한 학교의 병원에 지원할 수도 있고, 아산병원-삼성병원 같은 대형 의료원, 연고지의 종합병원에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인턴과정 1년, 레지던트(수련의 과정) 3년제 또는 4년 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인턴(intern)이라는 말은 inside (내부)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레지던트(Resident)는 reside (살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병원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의사가 이 시기를 가장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로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그냥 병원에서 삽니다.
제 기준으로 먼저 설명하면 저는 제가 졸업한 모교의 수련병원에 지원해서 인턴, 내과 레지던트 생활을 보냈습니다. 인턴은 매달로 나뉘어서 12개의 과를 한 달씩 경험하게 됩니다. 꼭 다른 과를 선택할 필요는 없고 관심 있는 과를 동료와 바꿔서 더 경험하거나 과가 이미 결정되었다면 조금 더 편한 스케줄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일정은 과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과에 한 명의 인턴만 있기 때문에 24시간 업무를 합니다. 밤에 호출이 오면 일하고 낮에도 일합니다. 중간에 짬짬이 자거나 휴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농담으로 인턴은 불면증이 없습니다. 어디서나 잘 잡니다. 주말에는 번갈아가면서 서로 호출기를 맡기고 24시간 정도 외출이 가능했으나 제가 인턴을 할 때 특정과에서는 외출을 내보내 주지 않아서 한 달 동안 딱 18시간 외출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턴을 돌면서 여러 과를 경험하고 경쟁해서 원하는 과를 지원하게 됩니다. 인턴을 마치면서도 시험을 보게 되는데 그 시험 성적등을 종합해서 선발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저는 내과 수련의(레지던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내과 레지던트 1년 차가 됩니다. 이것도 제가 수련을 때 기준으로 100일 당직이라는 것이 시작됩니다. 명목은 익숙하지 않은 병원 환자들을 지키고 병원에 있는 것인데 고시원만 한 당직실 한방에서 여섯 명이 생활합니다. 환자는 낮에만 아프지 않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호출을 밤낮없이 받습니다. 모르면 대처도 할 수 없습니다. 중간중간 콘퍼런스 발표도 해야 하고 논문도 읽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100일 거치면 감사하게도 2-3일에 한번 당직을 서게 됩니다. 물론 당직을 선 다음날도 일과는 동일하게 합니다. 퇴근도 업무를 마쳐야 할 수 있습니다. 업무가 많은 과는 당직이 아니어도 오후 10시 정도에 퇴근합니다. 새벽 대여섯 시에 회진 준비를 해야 하니 그냥 당직실에서 자는 날이 많습니다. 1년 차는 야간에 응급실과 병동환자 콜을, 2년 차는 응급실 백업을, 3년 차는 중환자실 당직을 서고 병원에서 심정지(코드블루)가 있으면 모두 뛰어나가야 합니다. 내과 기준으로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혈액종양내과, 류머티즘내과, 내분비내과, 등 과를 돌아가면서 다양한 환자를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2년 차가 되어 후배들이 들어오고, 3년 차가 되어서 후배들이 들어오고 4년 차가 되어서 후배들이 들어오고 전문의시험 준비를 합니다. 전문의 시험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 날을 위해 의과대학 때부터 준비한 최상의 시험스킬로 전문의 시험을 끝냅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전문의 시험장입니다. 이때 대부분 나이가 서른 살 전후입니다. 가정을 막 이루고 결혼과 첫 출산등 의미 있는 일이 연달아 생깁니다. 시험장에 만삭의 여자 선생님들이 시험을 시험장에 모여서 시험을 봅니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 사이에 출산을 하고 2차 시험을 본 선생님도 있습니다. 전설로는 시험을 마치고 출산하러 간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시험을 보지 못하면 1년 뒤에 다시 시험을 봐야 합니다.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내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20대가 아닙니다.
축하합니다. 국가가 당신을 부릅니다. 입영 통보서가 날아왔습니다.
숨 고르기를 좀 하겠습니다. 의사로서의 인생도 이 시기에 한번 숨 고르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 앞에 설명한 과정은 제가 수련을 할 때 일이고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주 근무시간을 주 88시간으로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근로자로서 의사의 안전과 명료한 상태에서 진료를 받을 의무가 있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일반 근로자와 비교하면 주 88시간도 굉장히 고강도의 근무이고 그 마저도 현장에서 완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의사가 어떻게 주 88시간만 일하고 환자를 보냐고 거꾸로 의사들이 반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병원의 의사들도 한 명의 사람이고 가정이 있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여태까지의 의료제도가 이렇게 위태한 제도와 약한 개인의 희생 위에 있었다는 것을 잠깐 언급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내과 기준으로 수련 기간이 레지던트 4년제에서 3년제로 바뀌었습니다. 보통 내과의 경우 전문의 취득 후 분과 전문의 - 소화기내과, 신장내과, 순환기내과 등을 최소 1-2년 수련하게 되므로 내과 전문의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통합 전문의 과정을 축소한 것입니다. 이것이 효율적인 수련과정인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아직 수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문의를 취득하면 남자는 국가의 부름을 받습니다. 의사의 병역 의무는 면제를 제외하면 3가지 길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미리 군복무를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군대 내에 부조리나 사고등이 지금보다 많았기 때문에 대학생 때 군복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군복무 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되었고, 군대 내 부조리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학생 때 군복무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공중 보건의사입니다. 훈련기간을 제외하고 36개월 동안 군대 대신 의료 소외 지역의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공익에 해당하는 의사들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보통 근무 강도는 높지 않지만 시골에서 생활하게 되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군의관입니다. 남자 의사들 중 가장 높은 빈도로 군의관이 됩니다. 군대 내에 군 병원이나 군부대에서 전쟁과 부상에 대비한 의사라고 생각하면 되고, 임상경력에 따라 전문의는 보통 대위, 일반의는 중위로 장교 임관을 하게 되니 상대적으로 일반 병사들 군생활에 비해서는 편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군생활 기간이 훈련기간 제외 36개월, 총 약 39개월 정도로 길고 대부분 군부대는 접경지역등 오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이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전문의와 군필자가 된 상태에서는 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전문의로서 취직이나 개업을 하는 등 활동을 하거나 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수련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전임의과정(펠로우)라고 합니다. 과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내과의 경우 보통 내과전문의라면 전임의 과정을 대부분 거치게 됩니다. 제가 수련받은 영역은 소화기내과이고 내시경등의 기술과 간, 담도, 췌장, 위, 대장등의 질환에 대한 추가적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보통 이 과정은 1년에서 2년 정도 소요됩니다.
정리하면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과정(의사면허, 전문의면허, 군복무, 전임의과정)을 거치고 자격을 따서 한 명의 의사로서 활동해도 되겠다. 하는 시점까지 시간이 총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군의관 3년, 전임의 1년 최소 15년이 소요됩니다. 20살에 입학해서 한 번도 쉬지 않았다면 30대 중반의 나이가 됩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문의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으로, 여러분 주변에서 대부분 개원하거나 활동하는 의사들은 이 과정을 마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의사들이 이만큼 고생했다. 전문의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과정을 견디는 것이 효율적인 인생 인가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알고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