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자싱(1) 김구 피난처
오늘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피난갔다는 자싱으로 이동한다. 전용버스로 2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다고 해서 인스타에 장소별로 답사간 사진을 정리해서 올린다. 일정은 노트북에 글로 쓰고 있지만 사진까지 정리해서 쓸 시간이 되질 않는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여기가 어딘지 모를 수도 있을거 같아 장소별로 대표사진을 정리해두면 도움이 될거 같다. 식구들이 인스타 사진을 보면서 나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보게 해주고 싶기도 하다. 사진 정리 덕분에 차안에서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금방 지나간다.
자싱(가흥) 김구피난처
1932년 윤봉길의거로 임시정부는 13년간의 상하이 시기를 마감하고 이동의 길을 떠난다. 그 첫 번째 이동지인 자싱은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김구피난처가 있고 기념관도 있어 이번 답사에서 가게 되었다.
영화 <암살>에서 본 곳인데 실제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다. 도착한 피신처는 추푸정이 아들인 청동셩이란 사람의 집으로 주변이 남호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도 북적거리는 상하이에서 오다보니 이곳이 더 한적하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피신처인지 모르고 왔으면 어디 경치좋은 별장에라도 온 느낌이었을 것이다.
김구는 피치목사집에 임시로 머물다가 추푸청이 운영하는 공장으로 피신했다. 그리고는 조금 더 안전한 곳인 절강성 지장에 있는 추푸청의 아들인 천동셩집으로 피신해서 1년 반정도 생활했다고 한다. 피치목사 부부와 추푸정가족들, 주아이바오라는 여성 이 어떻게 김구선생님을 도왔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김구의 현상금은 60만원으로 오늘날 대략 350억정도라고 한다. 그 만큼 김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김구선생님을 보호하는 하는 것 자체의 위험부담도 컸을 것이다. 타국의 낯선 독립운동가를 기꺼이 도와준 그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모두 소중하고 감동적이다.
추푸정과 인연이 있는 박창익의 활약과 이곳 피난생활의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념관 연구사님이 보충설명을 해주신다. 당시에도 밀정 때문에 김구가 이 공간에 머무는건 3-4명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정가족은 이곳에서 떨어진 곳에 따로 거주하며 김구가 혼자의 몸으로 빠르게 피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신다.
매일 쫓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두려움을 이겨낸 김구 선생님의 담대함이 놀랍다. 생애 내내 힘들었지만 이 피난길은 유독 더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은 특별히 김구선생님께 헌화 할 사람에 자원해서 꽃을 드린다. 나만의 작은 위로들 보내드리고 싶어서다.
설명을 듣고 난 뒤 천천히 내부공간을 둘러보았다. 언제든지 피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비상계단과 바로 옆 남호로 나가는 배가 보였다. 책에서 이 집 주인인 천둥셩이 김구 선생님이 호수로 피신할 수 있도록 일부러 호수가 보이는 자기 침실을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세심한 마음씀씀이에 더욱더 감동하는 현장이다. 김구 피신을 도왔던 뱃사공이자 김구와 부부행세를 했다는 주아이바오라는 여성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