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철도 이야기
학생들과 역사 수업을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킨 사건, 인물 이야기를 많이 다룹니다. 역사는 변화와 발전이 주된 주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과 사건 말고도 세상을 변화시킨 물건도 있는데요.
바로 ‘철’로 만든 물건입니다. 철로 만든 농기구가 가져온 농업의 변화, 철로 만든 무기가 가져온 전쟁 양상의 변화. 그리고 근대 철도와 증기선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까지 주된 변화에는 ‘철’이 있었습니다.
아이들한테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고 철로 만든 물건을 찾아보라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철로 만든 물건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생각해보게 하면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최근 여주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경강선이라는 철도가 떠오릅니다. 여주역 주변의 변화를 보며 일명 ‘역세권’이란 말이 이런 거구나 실감 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변화도 느낍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활의 변화를 느낀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경강선이 여주의 첫 철도는 아닙니다.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수려선’이라는 기차가 있었지요. 여주 시내를 답사하러 다니다 예전 여주군민회관 자리에 수려선 역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운행되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여주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특별전 ‘여주, 길로 통하다’를 관람하면서 박보경 학예사님을 통해 수려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수려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원에서 여주까지 구간의 기차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수려선(수원- 여주) 철도가 놓이고 1937년 수인선(수원-인천)과 연결됩니다. 일제강점기에 놓인 만큼 철도는 여주 이천의 쌀과 곡식, 강원 충청지방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철도에 실어 수원으로 수송한 후, 다시 인천항으로 가져가는 일제의 수탈노선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1930년 조선총독부 상공장려관에서 제작한 <조선 주요 물산 및 특산물 분포도> 지도를 보면 각 지역의 특산물과 함께 철도를 같이 표시했는데요. 당시 철도가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과 일제강점기 수업을 하면 철도 이야기를 빼놓지 않습니다. 일제가 철도를 놓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이 지도를 보면 단박에 설명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옛 지도나 자료에 여주라는 지명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학생들은 흥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지역과 관련된 자료 발굴이 중요합니다.
1938년 <조선 여행안내도>에도 수려선이 등장합니다. 철도가 수탈의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사람들이 이동의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원- 여주 구간은 자금이 부족해 표준 규격보다 작은 노선으로 건설되었고, 그러다 보니 운행되는 열차도 ‘꼬마 기차’라는 별명처럼 작은 기차였다고 합니다.
작다고 속도가 느린 건 아니어서 여객용인 디젤 기차는 수원까지 2시간 30분 만에 갔다고 하니 당시로선 빠른 편이죠. 요즘 KTX가 생각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금이 무려 당시 돈으로 1원 80전, 요즘 가격으로 환산하면 8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누가 이용했을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광복 이후엔 철도가 국유화되면서 요금이 대폭 인하되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기차를 이용하게 되었다네요. 여주, 이천, 수원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오가는 일이 많아졌겠죠. 당연히 그에 따른 여러 생활의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여주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자료와 당시 신문 기사, 경험담들이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