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망원경으로 각각의 특징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평상시에는 눈에 띄는 색깔만으로 백로, 황로, 왜가리 정도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마 사진을 보시면 이름이 왜 그런지 아실 겁니다. 다만 왜가리는 잿빛 깃털 색깔이 아니라 울음소리가 “왝왝 왁왁”으로 들려 왜가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백로는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희고 반듯하게 서 있는 백로를 선비의 모습에 비유하기도 하며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옛 그림이나 시 구절에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민간에서는 한 마리 백로와 연꽃이라는 ‘일로연과(一鷺蓮菓)‘가 과거시험의 초시와 복시에 연달아 합격한다는 ‘一路連科(일로연과)’와 음이 같아 과거시험에 급제하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아 백로 그림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도시에선 백로나 왜가리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고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배설물로 인해 차가 부식되거나 더러워지는 경우들이 있고, 시끄럽게 우는 소리도 거슬린다고 싫어한다고 합니다.
백로들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습니다. 둥지를 틀 숲 공간이 개발로 사라져버려 백로들이 도시의 공원이나 사람들 사는 공간 근처 나무에 둥지를 틀기 때문인데요. 몇몇 지자체와 환경단체들에서는 대안으로 백로 서식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는 북내면 신접리 마을 공간이 백로들에게는 참 귀한 공간이겠다 싶습니다. 이 공간에 있는 백로들은 멋진 집을 대대로 선물 받은 샘이네요.
누구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양보와 배려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시가 911을 추모하기 위해 쏘아 올리는 ‘애도의 불빛’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야간 불빛이 철새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물임이 입증되자 뉴욕시는 놀라운 조치를 취합니다. 최소 1,000마리 이상의 철새들이 그 광선 때문에 혼란에 빠지거나 그 안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모니터에 잡히면 일정 시간 동안 조명등을 끄기로 결정했다고 하지요.
북내면 신접리 주민들도 서식지 새똥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가 서식지 안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도 차에 떨어진 새똥을 보면 투덜거리곤 합니다.
여주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건 자연을 보며 살겠다는 뜻일 텐데요. 저는 여주에서 보는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불편함도 감수해야 겠지요.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보려고 합니다. 새똥을 닦으면서 시험을 보려는 사람들의 합격을 기원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 문신인 이양연이 지은 ‘백로’ 라는 싯구절에 나온 마음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도롱이 빛깔이 풀빛과 한가지니
백로도 모르고 냇가에 내려앉네
혹시라도 놀라 날아갈까 두려워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앉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