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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이 Aug 15. 2024

영이샘의 여주역사여행길-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현장을 찾아서(2)

홍천면에서는 인민위원회 등에서 부역하던 주민들을 흥천지서 부근 앞산과 복대리 쇠고개 공동묘지에서 총살했다고 합니다. 일부 주민들은 가까운 이천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는 길에 계신리 일대 강변에서 희생당하기도 했는데요. 역시 강변이라 처리가 용이한 때문이지요. 


흥천면 계신리 강변 일대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유족회 사무장님과 유족회원

대신면 보통리 송장 웅덩이 터(현재 당산리 소재)는 이름부터 현장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과 단순 부역자를 많이 처형되었거나 시신을 버린 곳이라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송장 웅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형이 많이 변하여 강과 한참 먼 곳이지만 이전에는 여강물이 돌아 흐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대신면에 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재산이 많이 있었던 최 선생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그분 가족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4녀 1남 자녀들은 전국으로 흩어져야 했고, 그중 막내였던 아들은 당시 5살로 부산의 아동시설로 보내진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전쟁의 아픔은 당시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살아남은 학살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힘들게 살아가야 했던 거지요. 


대신면사무소 수용소 자리(왼쪽사진)/ 대신면 보통리 송장 웅덩이 추정지(오른쪽 사진)

상동 세종고 근처의 강변에 예전에 얼음창고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각 면의 보도 연맹원들이 연행되어 여주경찰서 임시유치시설인 이곳 얼음창고에 갇혔다고 합니다이들은 경찰과 헌병들에 의해 심사된 후, 1950년 7월 1일경 여주읍 교리 건지미 골짜기(현 낙원주택 인근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한편 이곳은 인민군 후퇴 시기 여주지역의 우익인사 수십 명이 얼음창고에 갇혀 있다가 앞 강변 모래사장에서 희생된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학살에 좌익도 우익도 모두 희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지요. 

상동 얼음창고(현 세종고 근처 강변) 민간인 희생지- 좌우익 모두가 희생되었다.

하동에 있는 양섬은 가장 많은 희생자가 생긴 곳입니다. 여주경찰서가 가까이 있고, 부역 혐의자들이 연행되어 구금된 곳이 여주초, 여주시청 옆 창고다 보니 이곳으로 끌려와 강에서 학살된 겁니다. 이곳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고려하여 현재 양섬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2015년 민간인 희생자 지원을 위한 여주시의회 조례가 통과되고 첫 합동위령제가 이곳 양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추모행사가 매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화공원에는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비석, 희생자들의 눈물을 상징하는 조각상, 추모 리본을 달 수 있는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어 사건의 의미를 새겨보고 추모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양섬 평화공원 모습/ 평화공원에 새겨진 희생자 명단

저는 강변에 새를 관찰하거나 산책을 위해서 자주 나갑니다. 저에게 여주의 강은 아름다운 자연 경치가 있는 휴식처였지, 수많은 사람이 아픔을 겪은 현장이란 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샘들과 함께 지역의 강을 따라 한국전쟁 유적지를 돌아본 것은 저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주 여행에 ‘다크투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름처럼 제주 4.3 사건 아프고 어두운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입니다. 다크투어에 참여하여 제주 곳곳을 돌아보면서, 내가 제주에 그토록 많이 여행 다니며 그동안 무엇을 보았었는지를 떠올렸습니다. 성산일출봉의 4.3사건 현장에 새겨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글 <섬에는 우수가 있다>를 읽으며, 제주가 지질학적 가치가 있거나 유명한 관광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저의 제주 여행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제주의 사례처럼 지역의 아픈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활동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주민과 학생들은 물론이고 타지의 관광객들도 이런 여행에 동참하고 있지요. 그런 면에서 여주의 ‘여강길 다크투어’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픈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역사가 들려주는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생들과 함께,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이 현장에 가봐야겠습니다.          


양섬 평화공원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귀를 적은 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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