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현장을 찾아서 (3)
얼마 전 다녀온 노근리 평화재단 주관 노근리 학살 현장 답사에 미국에서 온 역사 교사들과 함께하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멀리 한국, 그것도 충북의 노근리까지 와서 자신들의 나라에서 벌인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 현장을 방문하고,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더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이후 있었던 한국과 미국 역사 교사 공동 세미나였습니다. 한국전쟁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는데요. 저도 그랬지만 함께 참여한 한국 측 역사 교사들은 한결같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입시나 진도를 이유로 한국전쟁 내용을 짧게 1-2시간 정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논쟁을 피하느라 학살과 같은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미국 교사들은 한국전쟁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자세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근리처럼 자신들이 벌인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누구라도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아직 여주에는 그 진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유해 발굴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장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현장들이 그렇습니다.
여주 능서면 왕대리 학살 현장은 그 발굴과정이 독특합니다. 2010년 5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왕대리 골짜기에 전사자 유해가 매장됐다’라는 마을 주민의 제보를 받고 유해 발굴에 나섰습니다. 그곳에서 유해 33구와 카빈총 탄피 37점, 민간인 단추·허리띠 등도 29점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유해가 집단으로 발굴된 데다, 유품 등으로 미뤄 민간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추가조사 결과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주민 증언과 유해의 나이(10~30대) 및 유품(민간인 단추), 발굴지점(계곡), 매장 형태(규칙성) 등을 근거로 이곳이 전사자가 아닌 민간이 학살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유난히 마음 아팠던 것은 유해의 나이가 10대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 있고 실제 발굴 유품에는 교복과 뺏지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마을 토박이 주민 홍 씨는 당시 전쟁 당시 17살이었는데 현장의 상황을 기억하며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통 총소리는 ‘탕탕’ 소리가 나는데 구덩이 속 사람에게 쏘는 총소리는 ‘퍽퍽’ 소리가 났어요.” 죽은 자의 사연도 가슴 아프지만, 살아남은 10대의 마음속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와 공포가 남았겠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