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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이 May 11. 2024

영이샘의 여주 역사여행길 4

여주의 돌을 찾아 떠난 여행길 4- 파사성 이야기2

파사성은 임진왜란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파사성이 실제 현재 보이는 모습을 갖춘 것은 임진왜란시기로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의 건의로 승장(승려장군) 의엄이 공사를 맡아 고쳐 쌓게 됩니다. 이곳 파사성에서 보면 남한강이 흘러 양평으로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충주 탄금대를 처쳐 영남과의 중요한 길목인 죽령과 조령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부입니다. 


당시 왜군의 진격로를 생각하면 당연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임이 인정받은 것이지요. 파사성 성곽위에 올라서 시원하게 펼쳐진 풍광도 즐기고 이런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것은 좋은 여행이자 역사공부가 됩니다. 

남한강이 양평으로 흘러들어 가는 모습

저는 성곽에 올라 주변을 보고 나면 내려서서 성곽의 돌들을 하나씩 살펴보곤 합니다. 보통 성곽을 답사가면 성곽위에 올라서서 주변 경치를 보거나 성곽의 시설물들을 보게 됩니다. 빈틈없이 정교하게 쌓아다던지 그 옛날 기술이 좋았다던지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성곽밑에서 돌들을 보면 켜켜히 쌓아진 돌에서 이 성을 쌓은 사람들의 수고가 보입니다. 



파사성은 둘레가 약 1,800미터로 큰 규모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규모의 성이라도 산위에 성을 쌓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 성을 쌓기가 몹시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역사 기록에도 나옵니다. 공사를 이끈 승려 의엄은 애가 탔는지 10년이 지나더라도 공사를 마치기 어려울 거 같다고 조정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파사성 성곽의 모습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공사를 시작한 지 1년 5개월 정도인 1596년(선조 29)에 공사가 완료되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전쟁을 수행중인 와중에서도 성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수도를 지키는 중요한 방어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 성까지 쌓은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냥 산을 오르는 것도 힘든데 돌을 나르고 쌓는 것은 다른 노역보다도 훨씬 힘든일이었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동원되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도망도 가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려고도 했겠지요.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소중한 내 가족을 지키겠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는 마음으로 성을 쌓았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나오는 수 많은 영토확장이나 전쟁의 이야기를 보면서 왕과 장군들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이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또 이겨냈을까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나라를 지키겠다’ 그런 거창한 명분이 아니었을 겁니다. 내가 해야 할 그리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는 작은 마음이 켜켜히 모여서 성도 쌓고 마을도 지키고 그랬을 겁니다. 

봄볕이 따가웠던 파사성

조금은 이른 더위에 땀을 흘리며 파사성을 올라 성을 둘러보면서 역사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역사의 숨은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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