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충남 서산 용현리 마애 삼존불을 보러 갔습니다. 예전에 마애불을 찾았을 때는 비바람에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각 안에 있는 불상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유명한 미소를 보려면 안내자가 전등을 비춰주며 설명을 해줘야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갔을 때는 보호각이 벗겨진 자연 상태에서 미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사찰에 가면 금동 칠이 된 많은 불상을 보게 되지만 저는 그런 불상보다는 자연에 있는 마애불을 좋아합니다. 바위에 새긴 불상은 그 주변의 풍광과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상들은 대부분 정교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어딘가 부족하고 균형이 맞지 않아 부처님의 위엄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을 보는 것 같아 정겹습니다.
여주에서도 그런 불상들을 여럿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 풍광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불상은 흥천면 계신리 마애불입니다. 신륵사가 강에 있는 절로 유명하듯 이 불상도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어 강 경치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불상을 만나기 전 자연 상태로 남아있는 강 습지의 아름다움에 먼저 반했던 곳이라 계절이나 시간을 달리해서 자주 찾아갔습니다. 어느 계절에 가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른 봄 강 습지에서 버드나무 새순이 돋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최근에는 벚꽃이 필 때 가봤는데 멀리 흥천 벚꽃길에 펼쳐진 분홍빛과 습지의 연초록빛이 너무도 잘 어우러져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풍광을 보고 나면 찬찬히 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올려다봅니다. 오랜 세월 강바람을 맞았을 텐데도 보존 상태가 좋아 옷 주름이며 얼굴이며 조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부처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반갑습니다.
그보다 더 친근하게 저를 반겨주는 것은 옆으로 벌린 왼쪽 손인데요. 불상의 손 모양 중에 ‘시무외여원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른쪽 손바닥을 올려서 보여주는 ‘시무외인’은 내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고, 왼쪽 손바닥을 펴서 내린 ‘여원인’은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입니다.
계신리 마애불 손가락이 시무외여원인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마애불의 손 모양이 어떤 모양이든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를 향해 내밀고 있는 그 손이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제 마음에는 아무 염려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걱정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불상을 찾아오면 엄마 같은 미소로 반겨주며 그저 어서 오라 하면서 제 손을 잡아줄 거 같습니다.
먼 옛날부터 이 강을 무사히 건너가 물건을 팔아야 했던 장사꾼이나 뗏목꾼들에도 무서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손을 내밀어 줬을 겁니다. 언제나 걱정거리가 많아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을 우리네 엄마들이 뭔가를 빌러 찾아오면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사연을 들어주고 미소를 지어주었겠지요.
관련 정보: 계신리 마애불,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계신리 산5번지, 고려시대.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