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신리 마애불에서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파사성 정상에 올라서 왼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옆 산 바위에 새겨진 커다란 마애불을 보게 됩니다. 양평 상자포리 마애불인데요.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앙평 개군면에 있는 불상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는 여주에 속했던 지역입니다. 파사성에 오른다면 10분 정도만 더 시간을 내면 만날 수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가서 아쉬운 곳입니다.
산 위의 높은 바위를 올려다보면 어렴풋이 불상의 얼굴과 옷자락이 보입니다. 언뜻 보면 성의없이 대충 새겨 놓은 듯한데 그 옛날 제대로 된 사다리도 없던 시절에 이렇게 높은 바위에 불상을 새기려면 꽤 힘들고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그 무성의한 듯 무심한 선으로 표현된 불상을 보면 오히려 엄청난 크기로 서있는 불상이 주는 위압감이 없어서 더 좋습니다.
마애불의 표정은 우리가 기대하는 친근한 미소를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굳은듯한 근엄한 표정이 보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 표정에서 다정하지는 않아도 속깊이 자식을 위하는 나이드신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처음 불상을 볼때는 아무 표정도 읽히지 않았는데 자꾸 보면 그런 상념이 드는 것이, 저도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무슨 경쟁이나 하듯이 우리나라 최대니, 세계 최대 높이니 하며 엄청난 크기의 불상들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정교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불상들도 많습니다. 그런 불상들을 보며 압도적인 크기나 그걸 만들고 세운 솜씨에 놀라기도 하고 실제로 궁금해서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위적인 장쾌함이나 섬세함 보다는 여주의 불상들을 만나며 본 자연의 풍광이 주는 시원한 눈맛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리고 투박한 불상들이 주는 푸근함과 정겨움이 좋습니다.
관련 정보: 상자포리 마애불,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36-1번지, 고려시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