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교사상황

교권과 학생인권의 줄다리기

by 김떱

30분 남짓의 자동차를 이용한 출근길.

학교에 도착할 때면 넓다란 교차로 한 귀퉁이에 '어제의 교통상황' 표지판이 시선을 끈다.

딱히 주목을 받고 싶은 요양은 없어보이지만, 숫자가 주는 긴장감은 운전자의 이목을 끌기는 충분하다.

'사망자 0에 부상자 64? 다행이네.'

'어휴, 오늘은 사망자가 3명이나 있네.'

출근길 마주치는 다른 학년 선생님께 건네는 인사처럼, 매일 나는 그 표지판과 차갑게 안부를 나눈다.


아침에 출근해서 교사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면, '어제의 교사상황'이 이목을 끈다.

학부모에게 황당한 민원을 받으신 선생님, 우리 반 금쪽이에 대한 푸념과 고민을 남기신 선생님과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여 처벌을 받았다는 선생님에 관한 신문 기사 링크까지. 어제의 교통상황 마냥 수많은 부상자의 소식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굳이 먼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까운 지인도 신규교사 시절 5학년 아이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던 적이 있다. 동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은 얼마 전 교육청으로부터 학부모 민원을 하나 받았는데, 주요 내용은 한마디로 '졸업할 때까지 저 선생이 우리 애 담임 맡지 않도록 해주세요' 였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교권 측의 우세라면 지금은 승부의 추가 반대로 기울어진 듯 하다. 한 개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줄다리기 경기의 응원석에 앉아 조용히 관망할 수 밖에. 그렇다고 어느 쪽을 특별하게 응원하는 것도 아니며, 이 줄다리기 경기를 흥미롭게 관전할 여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제의 교통상황 표지판을 바라볼 때마다 건네었던 차가운 인사는 어쩌면 수많은 사고의 결과를 내가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의 표시가 아닐까.


어제의 교통상황은 오늘의 출근길을 안내해준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 있다고 말하며.

고민 속의 내가 할 수 있는건 오늘의 아이들에게 교사와 학생의 상호존중을 알려주는 것 그 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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