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 없는 교사
불멍, 물멍, 숲멍...
다양한 멍 때리는 방법들이 얼마 전까지 꽤 유행했었다. 그중에서도 방학을 맞이한 내가 요즘 자주 하는 것은 고양이를 보고 멍 때리는 '고멍'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집 고양이를 볼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만큼 우리 집 고양이도 나를 볼 시간이 많아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롭게 같은 반이 된 친구와 처음 대화하는 순간은 보통 불현듯 찾아온다.
오늘이 그랬다. 늦은 저녁, 대뜸 내가 누워있는 방 침대로 고양이가 올라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거 자리 좀 같이 씁시다."
하더니 이불 한 구석 자리를 잡았다. 꾹꾹이로 자리를 다듬고는 이윽고 편하게 눕는 게 아닌가. 점점 잠에 빠져드는 이 당돌하고 귀여운 손님을 위해 나는 자리를 옮겨 의자에 앉아 고멍을 하기 시작했다.
3시간이 지났다.
잠깐의 고멍과 몇 번의 사진 촬영을 끝내고 계획에 없던 컴퓨터도 하며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침대 한 구석 웅크린 가엽고 귀여운 동물을 차마 깨워 쫓아낼 수가 없었다. 새벽이 더 깊어지고, 나도 하품을 연신 뱉을 즈음에야 고양이 손님은 일어나 만족의 하품을 내게 한번 보여주고 유유히 방을 나가버렸다.
누가 이 귀여운 생명체에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일일이 밥도 채워주고 똥도 치워주고 하루에 일정 시간 놀아도 줘야 하는, 혼자서는 살아가기 쉽지 않은 고양이. 다만 무슨 행동을 해도 귀여운 덕에 이 고양이는 여태껏 인간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가 보다.
신규교사 시절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일머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대학 시절 과외 몇 명과 잠깐의 알바들로는 나의 일머리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기에, 사회성과 적응력에 대한 나의 과신은 초등학교 교실 한 구석에서 민망함과 좌절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4반입니다. 저 다름이 아니라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당시 옆 반 선생님께서 사실상 내 사수 역할을 맡으셨는데, 1년 간 저 말을 하러 찾아뵙거나 전화드릴 때마다 어찌나 죄송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옆 반 선생님께서는 학교업무든 학생지도든 너무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도와주셨다. 한 번쯤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화내실 만도 한데, 정말 학년의 마지막까지도 오히려 신규로 와서 고생 많으셨다고 되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반 아이들 중 가끔 나 같은 일머리를 지닌 반가운 동지들이 있다. 진짜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되는 친구들. 그게 체육이든 미술이든 수학이든 말이다. 아니, 나는 진심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도 왕왕 있으니, 어찌 보면 나 같다는 말이 크나큰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아이들. 열심히 노력해 주는 모습만으로도 교사에겐 너무나 귀여운 존재들임에는 틀림없다.
고양이, 아이들 그리고 교단이 어색한 초보 교사.
아직 누군가 나를 가엾게 봐주는 덕택에 일머리 없는 교사는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