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소통에 도전하며
20여 년 전.
컴퓨터 모니터가 한아름에 들기 어려울 만큼 크고 두꺼웠던 때의 이야기다. 붙인 지 몇 달은 지났을 2002월드컵 스티커의 일부가 아직 모니터 전원 버튼 옆에 붙어있던 그때 그 시절.
초등학생 ‘잼민이‘였던 나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푹 빠져있었다. 부모님께 허락받은 하루에 단 1시간! 반짝이는 눈으로 위이잉 소음을 내는 컴퓨터 앞에서의 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깊고 강렬하다. 그 기억 속 한 장면은 아빠의 물음에서 시작된다.
“아들, 그게 그렇게 재밌냐?”
건조한 아빠의 목소리.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불호령이 이어질 거라 나는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난 버릇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아마 큼지막한 마우스를 괜히 돌려대느라 바쁘지 않았을까.
“그 스타크래프트란 거 아빠 좀 알려줘 봐라.”
예상과는 다른 어른의 태도에 아이들은 늘 호기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아홉 살 인생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교사가 된 순간이었다. 얼마나 신이 났을까.
하지만 내 기억 속 다음 장면은 아빠의 테란 유닛이 죽어가고 본진 건물들이 불타는 모습, 그리고 날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 사이 아홉 살 교사는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 일단 컴퓨터랑 해보자. 입구 막아야 되니까 테란. 맵은 쉬워야 하니까 무한. 일꾼으로 미네랄 클릭! 아니 우클릭! 컴퓨터는 초반에 빨리 오니까 입구 막아야 돼. 빙빙 도는 건물 지어야 돼. 컴퓨터 병력 왔어. 건물 수리해야 되는데. 안 되겠다 일단 치트키쓰자 아빠
그 후로도 게임이라면 치를 떨었던 아빠는 그럼에도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여주러 날 데리고 2번이나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 경기장을 찾아갔더랬다. 내가 그린 ’임요환의 드랍쉽‘이란 피켓을 내 손에 꼭 쥐어주고서.
교사가 되어 처음 만난 제자는 초등학교 3학년들이었다. 25명의 10살짜리 아이들. 그중 한 아이는 유독 팽이돌리기를 좋아했었다. 팽이 이름이 베이블레이드였던가. 공부도 평범, 교우관계도 평범했던 아이였지만, 팽이를 돌릴 때면 그 아이는 빛이 났다.
초임교사의 쉬는 시간은 가끔 심심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도경아, 그게 그렇게 재밌니? ”
“... 네. “
“이건 이름이 뭐야?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교실 뒤편에 친구들과 앉아있던 그 아이는 벌떡 일어나 나를 자기 자리로 데려갔다. 가방에서 낡은 비닐백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팽이를 책상 위로 엎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중 한 두 개는 바닥에 떨어졌건만 다시 주울 정신도 없었는지 결국 내가 주워주었다. 남은 쉬는 시간을 거진 다 써가며 베이블레이드 팽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려 노력했다. 얼마나 재밌게 설명하던지. 듣는 나도 재밌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과의 소통은 참 쉽지 않다. 내가 모르는 모바일 게임이야기, 내가 모르는 아이돌 이야기. 내가 모르는 다른 반의 친구와 놀았던 이야기...
아빠의 스타크래프트 도전기는 10분 만에 초라하게 막을 내렸지만, 내게는 ‘임요환의 드랍쉽’처럼 멋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교직생활에서 만난, 그리고 앞으로 만날 아이들도 나와의 기억이 아름답게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