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 속에서 살아남기
체육전담 시절 내 자리는 체육관 한 구석에 있던 작은 골방이었다. 겨울철이 되면 북향의 창문 바로 옆자리로 외풍이 들어와 웅크리는 것만이 추위를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인 그런 곳이었다. 유명무실했던 난방 기구 아래 홀로 추위를 벌벌 떨면서 그래도 전담실이 따로 있는 게 어디냐, 하면서 하루하루 보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체육관으로 오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신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체육시간은 학교생활의 꽃이자 낭만! 이래저래 발걸음 가볍게 뛰어다니거나 떠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반이든 체육수업하러 올 때면 와글와글 체육관은 들뜨게 된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줌 수업과 학교 교실 수업을 병행할 때여서 아이들의 학교 체육시간이 1주일에 1번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나에겐 지도가 쉽지 않게 느껴졌던 경우도 많았다. 체육시간이라면 모두가 그런 고충들을 겪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안일했던 생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골방 문을 여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풍경은 실로 잊기 어려웠다.
마치 새끼 오리들이 어미를 따라가듯 조용하게 체육관으로 오와 열을 맞춰 들어오는 반 아이들. 그 앞에는 학교에서 성격 좋고 일 잘하기로 소문나신 선생님. 내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고요하게 들어온 아이들은 알아서 줄을 맞추고 준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저렇게나 애들이 조용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니, 저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기강을 엄청 세게 잡으시는 걸 거야. 대단하시네,, '
쩝 하고 괜히 입맛을 한번 다시며, 나무 위에 높이 달려있는 포도를 보며 분명 신포도일 거라 외치는 여우의 비뚤어진 마음으로 다시 체육관 골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하지만 내 희망과는 달리 신 포도가 달디 단 포도로 바뀌는 데에는 고작 몇 분이면 충분했다. 준비운동이 끝나고 얼마 뒤 이번에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체육관 벽을 타고 내게 전해져 왔다.
그 선생님의 일명 '고인물 플레이'에 한동안 넋이 나가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실까.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나에겐 괜한 자격지심이 되었기도 했는데, 한참 지나 그런 내 모습조차 후회스러워 반성하게 되었다.
학교 일이 능숙하신 선생님들을 보며 가장 부러운 점은 업무 처리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통제력이 아주 탁월하시다는 것이다.
'어쩜 저 반 아이들은 복도에서 뛰지도 않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할까?'
'발표를 어쩜 저리 잘할까? 우리 반 애들은 쉬는 시간에만 날아다니던데.'
하는 생각들은 10년 차, 20년 차 선생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일상다반사에 가깝다.
덧없는 고민들이 몇 년 간 쌓였다.
나는 이 일을 언제쯤이면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하는 자조섞인 질문들에 명쾌한 대답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교사의 신 포도는 쓰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