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윤아, 안녕?ㅡ 1화
선생님이 메모지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뭐든 괜찮아요.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돼요.”
사과 모양 연두색 메모지는 꼭 여름 사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연두색 여름 사과.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상큼한 맛이 그득해진다.
“할 말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누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할 말이 없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신기해서 돌아보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정 없으면 안 써도 되지만…”
선생님이 집게손가락으로 한쪽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책이 어땠는지, 어떤 부분이 재밌었는지 써도 되겠지?”
서걱서걱. 연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필통에서 무지개 연필을 꺼냈다.일곱 가지 무지개색이 뱅뱅 돌며 띠처럼 둘러싼 무늬의 연필이다. 이 연필은 특별한 날에만 쓰는 거다. 바로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무지개 연필을 손에 꼭 쥐고 또박또박 글자를 써 나갔다.
윤봄희 작가님께.
드디어 작가님을 만나는 날이에요. 얼마나 설레는지 몰라요.
저는 3학년 1반 안소윤이에요. 창가 두 번째 줄 자리에 앉아 있어요.
작가님, 저를 만나면 꼭 인사해 주세요. 소윤아, 안녕? 하고요. 꼭이요!
제 친구 다미에게도 인사해 주세요. 다미는 네 번째 줄에 앉아 있어요.
손바닥만 한 메모지가 금세 가득 차 버렸다. 글씨를 좀 작게 쓸걸. 나는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괜찮다. 화살표와 함께 작은 말풍선을 그리고 ‘뒤를 보세요’라고 써넣었다.
지금 무지개 연필로 쓰고 있어요. 이 연필은 친구가 전학 가면서 선물로 줬던 거예요.
오늘 두 번째로 쓰는 거예요. 처음은 엄마에게 쓰는 편지였어요.
저는 『두두의 초록 모자』 책을 세 번 읽었어요. 읽을 때마다 점점 더 재밌었어요.
두두가 구름에 매달려 초이한테 가는 장면이 제일 재밌었어요.
메모지의 뒷면까지 꽉 차 버렸다. 어떡하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썼나? 지우고 다시 쓸까? 지우개를 집어 들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안 돼. 지우면 너무 지저분해질 거야.
나는 목을 빼고 선생님을 봤다. 컴퓨터 화면을 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소윤이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나는 뜨끔해서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했다.
‘메모지가 더 필요해요.’
내 몸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일 때가 많다. 아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종이를 찾아봤지만 사과 메모지처럼 예쁜 종이는 없다. 공책을 찢어서 쓰는 건 내키지 않는다. 예쁘지도 않고 예의도 아니니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화장실로,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머뭇머뭇 선생님께 다가갈까 하던 참이었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사과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글자도 없는 깨끗한 메모지였다. 둘러보니 주변 아이들 책상에는 메모지가 다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그래, 이건 나를 위한 메모지야! 나는 속으로 외치며 메모지를 덥석 주웠다.
메모지에다 한창 할 말을 쓰고 있을 때였다. 또 한 장의 사과 메모지가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고개를 드니 이호준이 옆에 서 있었다.
“뭘 그렇게 많이 쓰냐?”
나는 잽싸게 팔로 메모지를 가렸다.
“흥, 내 것까지 많이 써라.”
이호준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동그란 뒤통수에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아까 할 말 없다고 한 애가 이호준이었나? 어쨌든 메모지 한 장이 더 생겨서 좋다. 나는 줄줄이 떠오르는 말을 메모지에 썼다. 세 장의 사과 메모지를 보고 있으니 배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