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중환자실, 생과 사 사이의 공간

3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고, 너무 길었다.

by 라쏘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가족이 직접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중환자실 입원 준비물 리스트



디매트 : 까는 매트 20개

이불을 매번 빨기 어려우니 그 위에 별도 까는 매트가 있다.



성인용 기저귀 (찍찍이형, 디펜드 등)

하루 3~4개는 기본.

성인을 입혀야 하니 입고 벗기기 쉬운 찍찍이형은 필수다.


개당 약 1,900원.

일주일이면 기저귀값만 5만 원 가까이 든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아기 기저귀값 벌러 간다는 말, 이제야 이해가 가네…”



물티슈 (100매 이상, 2~3개)

손발 닦기, 입술 닦기, 얼굴 정리까지

병원에서는 물보다 더 많이 쓰인다.

아빠는 맨날 비데 하고 싶다고 간호사들을 지겹게 노래를 한다.


비닐장갑 (100매씩 포장된 박스형) * 3개

간병인, 보호자 모두를 위해 필수.


1회용 면도기

남자 환자인 경우 수염을 밀어주기 위해 구비해 두라고 한다.


마스크

중환자실 입장은 방역수칙 준수 필수.



이 정도까지 필수템이고,

우리는 클렌징 티슈 별도로 구매해 가서

아빠 얼굴과 귀, 목 등을 닦아준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 11시, 아빠에게 도착한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한 번, 오전 11시에 단 30분만 가능하다.


시간도 짧지만,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환자당 단 2명으로 제한된다.

가족이 여러 명이라면 자연스럽게 5~10분씩 나눠 교대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우리 가족도 그렇게 하루하루 면회를 이어갔다.




정각 5분 전이 되면 그 좁은 대기실은 북적북적하다.

병원 근처로 주차가 하기 힘들어서 우리는 거의 한 시간 전부터

겨우 주차하고 병원에 도착하는데, 다양한 가족들을 볼 수 있다.








처, 딸이라는 단어를 적는다는 것은



중환자실 앞에 도착하고 나서 정각 5분 전,

우리가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면회자 명단을 적는 카트를 가져오는 분이다.

어쩔 땐 간호사일 때도, 어느 날은 물품 관리 아저씨일 때도 있다.


면회자 명단표를 매번 작성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면회자 본인, 그리고 그 옆에 환자 이름, 그리고 이 환자와

어떤 관계인지 써야 한다.



엄마는 아빠의 “처”,

나와 언니는 아빠의 “딸”

형부나 남편은 아빠의 “사위”로 이름을 올린다.


그렇게 “아빠”의 가족은 매일 오전 11시

이 좁은 중환자실 복도 앞에 모인다.


종이 위에 관계는 단 한 두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단어 안에는 무수한 시간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 11시, 아빠에게 도착한다.





마스크로는 가릴 수 없는 감정들



면회 명단을 작성하는 테이블 앞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펜을 쥔 채 망설이고,

누군가는 벽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딸, 아들‘, 어떤 이는 ‘엄마’라고 적으며 입술을 꾹 다문다.


표정은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불안함과 슬픔은 눈빛과 손끝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끔은 같은 줄에 대기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끼리

짧게 눈이 마주친다.

서로 말은 없지만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도 오늘 무사히 잘 버텨내시기를









30분이라는 시간, 너무 짧고 너무 길다


11시, 면회가 시작되면

각자의 가족들을 찾으러 들어간다.


그때부터 계속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도 있고,

담백하게 불편한 건 없는지 살피는 곳도 있다.


우리는 가장 안쪽에 있는 아빠를 찾아간다.

머리 위로는 창도 있는 나름 좋은 자리인 것 같다.


엄마는 아빠 손을 조심스럽게 주무르고 얼굴 가까이에 대고

“여보, 나 왔어. 오늘은 좀 어때?” 하고 이야기하고,

나는 아빠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드리며

“빨리 집에 가자, 아빠. 아빠 없으니까 집이 너무 지저분하네” 하고 말을 건넨다.


양팔 위로 꼽혀있는 수많은 바늘 위로 시퍼렇게 멍이 크게 들어있다.


그리고 며칠 째 물을 못 먹어 바싹 마른 입술 위로 피딱지가 져있다.


지난번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인 듯했다.


아빠 입 안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임플란트 했던 아랫니가 부러진 것 같다.


참 여러모로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아빠, 실비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아빠 걱정이 좀 지나고 나면 이제 겨우 주위에 눈이 들어온다.



병실 들어오자마자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어머니와,

나보다 최소 10살은 어려 보이는 20대 어린 친구들인 것 같은데

누워계신 여자분 손을 붙잡고 울면서 엄마에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왔어, 눈 좀 떠봐, 발가락으로 인사해 줘 “


라고 하면서 엄마의 안부를 살피지만,

의식이 없고 우리보다 조금 더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 보였다.


내 가족도 아닌데, 왜 그리 울컥하던지.


며칠간 대기실에서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그 가족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고

그 아주머니가 계시던 병상은 새로운 분이 오셨다.


‘좀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신 것이길’ 바라지만,

엄마에게 고개를 묻으며 울던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잊히질 않았다.





중환자실, 그곳은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인 듯했다.







면회 시간 30분은 너무 짧은데,

그 사이에 가족알 수 없는 기계음, 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도.

그게 매일 반복되었다.


때로는 감정과 걱정이 너무 꽉 들어차서 하루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빨리 발견하신 거예요. 첫 고비는 넘겼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빠의 중환자실의 입원 기록.
하루 30분, 단 2명만 허용된 면회 시간 속에서
가족은 매일 울고, 기대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섭니다.
아버지의 회복을 기다리며, 중환자실 가족이 겪는 현실과 감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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