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쿵” 소리와 함께 무너진 일상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비극의 시작(아빠, 중환자실에 입원하다)

by 라쏘








그날따라 이상하게 운이 좋았다.

회사 체육대회에서 내가 속한 팀이 전 종목에서 1등을 하고,

나는 훌라후프 개인전 1등을 하고, 다트도 어쩌다 보니

남녀 전체 1등을 해서 내가 MVP로 뽑혔다.


그 덕에 상품도 양손 가득 무겁게 받았다.

곧 퇴사를 앞두고 있어 퇴직금 제대로 챙겼구나~ 싶어서

‘집에 가져가서 가족들이랑 자랑해야지.’

기분 좋게 회식 자리까지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언니에게 카톡이 온 것을 보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아빠가 쓰러져서 수술 들어갔어.”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상품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깔깔 웃고 있던 내가

순식간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세상이 180도 뒤집혔다.










남편과 나는 주변에서도 꽤나 유명한 짠돌이 짠순이다.


평소엔 택시를 거의 타지 않는다.

조금 불편해도 걷거나 지하철이나 버스가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본가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다.

비는 퍼붓고, 도로는 막히고,

물방울에 비친 차는 붉은 불빛으로 채워지고, 차 안은 고요했다.


기도와 걱정, 죄책감과 이기심이 엉켜 있었다.


그냥 정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빠가 평소에 그리 다정한 편도 아니었고

사실 애정관계가 두텁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도착하기 전에 진짜 잘못되면 어떡하지…’

‘앞으로 병원비는 어떻게 하지…?’

‘혹시 아빠가 이대로 오래 아프고, 가족이 다 지쳐가면서 오랫동안 고통받게 되면…’

‘차라리 고통 없이 빨리 가는 게 나은 건 아닐까…’


그런 못된 생각이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면서도,

현실을 두려워하는 초라한 인간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책망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이미 수술실이었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아빠의 누나인 고모

여자 세 명이 나란히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엄마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들었다.


평소처럼 퇴근하고 와서

당구치고 , 배 아프다며 집에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쿵 소리가 나면서

화장실 문이 닫혔다고 했다.


그 소리에 엄마가 놀라 화장실로 가서 문을 두들기고 했지만

아빠가 몸으로 막은 건지 문이 안 열렸다.


엄마는 정말 본인이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배로 꽉꽉 밀면서 겨우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아빠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고 했다.


변기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기절한 것 같았다.

그렇게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앞니 임플란트 한 게 깨졌고,

입술에도 피가 나고 있었다고 했다.


아빠를 흔들며 정신 차려보라고 했지만

의식이 없어서 급하게 119를 불렀고

그렇게 한 시간여만에 수술할 곳을 찾아온 곳이

성포동 사랑의 병원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문고리로 배 옆으로 밀다 보니 멍이 크게 들어있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는 그래도 아빠랑 대화도 했다고 했다.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에 “A형 “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도 또박또박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그래도 다행이네 “하고 마음을 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밤 10시에 켜진 수술실 빨간불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꺼졌다.


긴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은

피곤한 기색이 여력 했지만,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다.




뇌출혈이었고, 코일색전술로 막았습니다.
쓰러져서 응급실로 오는 환자 90%는 도착 전에
사망하는데, 첫 고비는 그래도 넘겼어요



그 말이 참 이상했다.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게 되는 상황.

그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수술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혈전이 남아 그날 밤, 아빠는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았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머지 가족들은 벤치에 말없이 앉아 있었고,

나는 벤치에 남편 무릎을 베고 누워서 쪽잠을 잤다.


손에 쥔 핸드폰에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만

내림을 반복하면서,

도무지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평소에 하느님은 냉담하는 나일론 신자였지만

그날만은 “살아만 주세요.”

하고 이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빨리 발견하신 거예요. 첫 고비는 넘겼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60대 아빠의 뇌출혈 중환자실의 입원기.
하루 한 번, 단 30분, 2명만 허용된 면회 시간 속에서
가족은 울고, 기대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섭니다.
아버지의 회복을 기다리는 가족이 겪는 현실과 감정을 기록합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